그래픽=손민균

한국은행의 금리 동결에도 재테크 시장은 안도보단 불안감이 커진 분위기다. 불황과 호황의 갈림길에서 금리의 향방은 안갯속이다. 예적금의 금리 매력은 떨어졌고 주식,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돼 투자 심리도 얼어 있다. 재테크 전문가들은 “투자 전략을 공격 태세로 전환하기보다는 방어력을 키우는 전략을 취해야 할 때다”라고 조언했다.

한국은행(이하 한은)은 지난 23일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최근까지 시장에는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한은의 이번 결정을 두고 금리 인하 신호가 아닌 ‘인상 흐름 속 숨 고르기’로 해석해야 한다는 진단도 잇따른다. 한은이 추가 인상 여지를 둔 데다 미국의 금리 기조와 외환시장의 불안, 물가 동향을 보면 금리 인상 가능성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커졌다는 시각에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6명 중 5명이 “이번엔 동결을 하지만 ‘최종 금리 3.75%’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나머지 1명만 현재 3.5% 수준으로 동결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을 냈다.

◇ “기준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예적금 장단기 분산 전략”

외환시장 불안과 자본 유출 문제가 부각되면, 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수 있다. 기준금리가 제한적으로 더 오르더라도, 은행권 예금 금리가 지난해 상단인 연 5~6%까지 오르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한은의 이번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 오건영 신한은행 WM사업부 팀장은 “기준금리를 3.5%까지 빠르게 올렸으니 잠시 쉬어가는 스탠스로 볼 필요가 있다”며 “한은은 환율 움직임을 보면서 추가 인상을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 팀장은 “미국의 기준금리가 5%를 넘었는데 우리나라가 3.5%에서 멈추면 금리 차에 따른 자본유출 문제가 부각될 수 있다”면서 “환율이 빨리 뛰면 자본 유출이 발생하고 이 영향으로 수입 물가도 오르게 되는데, 수입 물가가 오르면 결국 국내 물가 상승 압력이 다시 커지면서 금리를 추가로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리 인상기에 예적금 재테크를 노렸던 금융소비자로선 한풀 꺾인 금리가 아쉬운 상황이다. 지난 24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주요 예금 상품(특판 제외)의 최고 금리(1년 만기)는 연 3.55~3.99%다.

다만,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여지를 두면서 내리던 시장금리가 반등했다. 지난 16일 3.68%대였던 은행채 1년물 금리는 24일 기준 3.82%대로 올랐다. 목돈은 있는데 금리 조정기라는 점에서 채권과 주식, 부동산 등 투자도 주저하게 된다면, 4% 전후의 예금 상품이나 고금리 특판 상품을 찾아 자금을 분산해두는 것도 방법이다.

오건영 신한은행 팀장은 “정기예금 가입도 금리 상승에 대비해 초단기 예금을 가져가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금리가 고점을 찍고 돌아섰을 때를 대비해 소액으로 조금씩 장기 예금에 담아두는 분산 전략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가령, 예적금 장단기 금리차를 활용해 6개월~1년짜리를 40% 또는 45%, 2년짜리를 30% 또는 35%, 3년짜리를 30% 또는 25% 등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식이다. 금리가 고점을 찍고 떨어지고 부동산과 주식 시장의 조정 장세가 끝나는 것에 대비해 투자 자금의 유동성을 확보하면서도 2·3년짜리 예금 금리만큼 추가 수익을 챙겨 금리변동 위험에 대비해놓는 것이다.

김진욱 한국씨티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24일 보고서를 통해 한은이 최소 6개월 이상 제한적인 통화 정책을 유지할 것”이라면서 “잠재적으로 올해 하반기에 금리 인하 사이클이 시작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8월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시작해 하반기는 기준금리가 2%까지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23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모니터 화면에 원달러 환율이 나타내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7.8원 내린 1,297.1원으로 마감했다. 2023.2.23/뉴스1

◇ “채권·주식·부동산 등도 방어력 있는 데 투자해야”

미국과 우리나라의 금리 정책 변화 기대감이 커지면서 채권과 주식, 부동산 등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도 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기대감이 시장에 선반영된 측면이 있어 가격 상승세가 주춤하며 단기적으로 혼조세를 보일 수 있다는 경고음도 나온다. 금리 정책 변화를 기대하고 한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올인’이나 대출을 받아 자산을 사들이는 소위 ‘영끌 투자’는 금물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지난 1월 국내외 증시에 금리 인하 기대감이 선반영되면서 상승장이 연출됐는데, 미국의 금리 정책과 끈적끈적하게 내리는 물가 등의 영향으로 실제 시장보다 심리가 성급했다는 의구심이 동시에 생기고 있고 이로 인해 투자 심리가 또다시 위축되면서 주가 상승이 둔화하거나 등락을 반복하는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채권은 금리가 오르면 가격은 하락하기 때문에 수익률이 떨어져 채권 투자 손실을 볼 수 있다. 채권은 고정금리형 상품이다. 금리 인상 속 낮은 쿠폰(금리)의 채권에 자금이 오랫동안 묶이게 되면, 투자 실패인 셈이다.

오건영 신한은행 팀장은 “지금은 금리 인상 리스크를 열어둬야 하는 때이고, 단기채권에 비중을 좀 더 두고 가져가는 편이 나을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와 동시에 금리가 마냥 올라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니 장기 채권은 분할 매수하거나 소액적립식 투자를 고려해볼 만한 타이밍이다”라고 조언했다. 금리 상승과 하락 불확실성을 고려해 채권 투자도 분산하라는 의미다.

금리 상승 국면에서는 만기(듀레이션)가 짧은 단기채 투자 비중을 높여 이자수익 등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운용하는 전략이 유리하다. 하지만 금리가 내리면 수익을 제대로 챙길 수 없다. 금리가 하락하는 국면이 되면 중기채 투자 비중을 늘여 자본차익 등 수익성을 내는 전략을 노려야 한다.

진형숙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팀장은 “시장에서 금리 인하를 일찍이 기대하면서 채권 쪽으로 자금이 많이 들어갔는데, 금리가 단기에 튀어 오르면서 일부 투자자들의 경우 채권 투자 시점에 따라 2~3%대 손실 구간에 접어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진 팀장은 “현재는 위험 자산이나 상품에 대한 과감한 공격보다는 방어력이 있는 주가지수연계증권(ELS)과 함께 장기채권, 신용등급이 높은 채권 등에 대한 투자도 고려해볼 수 있는 시기다”라고 조언했다. 최근 연기금, 퇴직연금 등의 매수세도 하위 등급 채권보다는 우량 등급 채권에 더 쏠리기도 했다.

ELS는 코스피200, S&P 500 등 지수나 삼성전자, 네이버 등 개별 종목의 주가가 투자 기간에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면 약속한 수익률을 보장하는 상품이다. 기준이 되는 지수나 종목의 가격이 일정 값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수익이 나기 때문에 직접 투자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긴축 정책 장기화 우려로 미국 달러화 가치가 다시 들썩였는데, 달러 투자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달러 추세 전환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시각에서다. 최근 미국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원·달러 환율)이 두 달 만에 다시 1300원대로 뛰었는데, 미국 달러를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들은 달러를 팔며 환차익을 실현했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진형숙 우리은행 PB팀장은 “원·달러 환율이 당분간 박스권에서 움직일 수 있다”면서 “강(强)달러가 길게 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현시점은 달러를 매수할 시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