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손민균

신용등급이 올라 금융권에 대출금리를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금리인하요구권’ 신청 건수가 늘고 있지만, 금융권은 오히려 이자를 감면해주는 수용률(신청건수 대비 수용건수)을 낮추고 있다. 서민들이 고금리 여파로 신음하는 사이 시중은행은 퇴직금·성과금 등으로 ‘돈 잔치’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금리인하요구권은 대출자의 재산이 증가하거나 신용평점이 상승하는 등 신용 상태가 개선됐을 때 대출자가 금융회사에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2019년 6월 법제화됐다. 최근 기준금리가 빠르게 올라 대출금리가 급등하면서 금리인하요구권의 행사가 중요해졌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저축은행·여전·보험·상호금융 등 금융권에 신청된 금리인하요구권 건수는 2019년 한해 75만4000건이었으나, 지난해 상반기에만 119만1000건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수용률은 48.6%에서 28.8%로 하락했다.

특히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은 은행마다 차이가 크다. 은행연합회 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금리인하요구권 평균 수용률(신청건수 대비 수용 건수)은 약 41.1%다. 5대 은행에 금리인하를 요구한 10명 중 4명 정도가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셈이다.

5대 은행 중에선 신한은행이 30.4%로 가장 낮았다. 이어 하나은행은 33.1%, KB국민은행은 37.9%, 우리은행은 46.5%, NH농협은행은 59.5%였다.

지방은행에서는 제주은행의 수용률이 6.7%에 불과했다. 이어 대구은행 37.4%, 경남은행 38.2%, 광주은행 38.7%, 전북은행 39%, 부산은행 42.8% 등이었다.

카카오뱅크·토스뱅크·케이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 3곳의 가계대출 금리인하요구권 평균 수용률은 20.5%로 나타났다. 10명 중 2명만 대출 금리를 낮출 수 있는 것이다. 토스뱅크의 수용률이 17.8%로 가장 낮았고, 카카오뱅크는 17.8%, 케이뱅크는 24.6%였다.

서울 시내의 한 은행 대출창구에 금리인하요구권 안내 배너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은 지난해 시작한 금리인하 실적에 대한 비교 공시를 더 구체화하는 내용의 금리인하요구제도의 실효성 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세부 대출 유형별로 구분해 비대면 신청률, 평균 인하금리 폭 등의 수치를 밝히기로 했다. 또, 금융사가 금융소비자의 금리인하요구권 신청을 거절할 경우에는 불수용 사유에 대해 안내해야 한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가계대출에 대한 금리 인하 요구 사유는 은행마다 비슷하다. 취업이나 승진, 이직, 전문자격 취득 등을 통해 소득이 증가했거나 자산 증가 또는 부채 감소로 자산이 증가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를 수용하는 기준은 은행별로 다르다. 은행 내부 신용평가에 따라 등급이 개선된 경우에만 대출금리를 조정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권에선 금리인하요구권 수용률 공시에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대면 신청 등 금리인하요구 절차를 간편하게 구성한 회사에 신청이 몰릴 수 있고, 조건이 되지 않는데도 일단 신청을 하는 허수도 많다는 주장이다. 일례로 카카오뱅크의 경우 수용률은 19.0%로, 가장 높은 NH농협은행(57.9%)보다 낮지만, 신청건수는 45만8890건으로 농협은행(8439건)의 약 54배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1~2년간 금리가 많이 올라 이자를 한 푼이라도 줄이는 게 재테크 방법으로 떠오르면서 금리인하요구권 신청도 활발해지고 있다”면서 “다만 여러 왜곡 변수가 많아 이 점을 고려해 공시가 개선되면 은행들도 금리인하요구권 수용 여부를 이전보다 긍정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