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주요 챌린저뱅크 로고. /각 은행 홈페이지

최근 정부와 금융 당국이 시중은행의 과점 체제를 해소하겠다고 나서면서 국내에서도 영국 챌린저뱅크와 같은 형태의 새로운 은행이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다. 챌린저뱅크는 정보기술(IT)을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인터넷은행과 비슷하지만, 회사별로 보다 특화되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이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은행의 과점에 따른 폐해가 크다”고 지적하며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등 당국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챌린저뱅크 도입을 포함한 은행 과점 체제 개선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갔다.

‘한국형 챌린저뱅크’의 성공 가능성에 대한 금융 시장의 시각은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특화 서비스를 하는 새 은행이 나올 경우 시중은행에 쏠린 이용자를 분산하는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지만, 출범 6년이 지나도록 3%를 밑도는 점유율에 허덕이는 인터넷은행의 길을 따를 것이라는 회의적 전망도 많다.

◇ 英, 성인 27%가 챌린저뱅크 계좌 보유

챌린저뱅크는 현재 국내 상황과 비슷하게 시중은행들의 과점 문제를 겪었던 영국이 금융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지난 2013년 도입했다. 1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2021년까지 총 26개의 챌린저뱅크가 인가를 받았으며, 전체 영국 성인의 27%가 넘는 1400만명이 계좌를 보유하고 있다.

기존 은행의 보수적인 운영 방식을 벗어나도록 한다는 도입 취지에 맞게 영국의 챌린저뱅크는 회사별로 특화된 서비스를 갖추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챌린저뱅크는 레볼루트다. 지난 2015년 설립된 레볼루트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한 외화 환전 플랫폼으로 시작해 현재 은행 업무는 물론 주식과 보험, 가상자산 등 종합 금융자산을 거래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1500만명의 개인고객, 50만곳의 기업고객을 보유하고 있으며, 30여개국 통화의 환전을 할 수 있다.

주요 영국 챌린저뱅크 현황

2016년 설립된 몬조는 모바일 앱과 연동된 마스터카드 제휴 선불카드 서비스로 출발한 회사다. 기존 은행의 현금인출기(ATM) 이용 수수료를 없앴고, 자체 프리미엄 카드를 통해 여행자 보험 등의 여러 부가서비스를 제공한다. 전 세계로 영역을 확장 중인 레볼루트와 달리 몬조는 자국 내 서비스에만 집중해 현재 영국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스털링뱅크는 레볼루트, 몬조와 함께 영국 3대 챌린저뱅크로 꼽히며 지난 2017년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개인용, 유로전용, 10대용 등 4종류의 개인용 계좌와 기업 계좌를 제공하며 200만명이 이용 중이다.

오크노스는 2015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회사로 중소기업 대출에 특화돼 있다.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난해 기준 50만파운드(약 8억원)에서 4500만파운드(약 700억원) 범위에서 대출을 해 준다. 오크노스는 코로나19 사태 당시 기업의 과거 실적보다 현재 경영 상황과 미래 전망 등을 다면적으로 분석하는 심사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여러 글로벌 은행에 판매하기도 했다.

◇ 수익 내는 곳은 극소수

영국의 챌린저뱅크들은 외형적으로 빠르게 성장했지만, 제대로 수익을 내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20년 기준 오크노스만 7800만파운드의 세전이익을 기록했을 뿐 대다수 챌린저뱅크들은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레볼루트의 경우 2020년에 전년 대비 34% 증가한 2억2000만파운드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1억6000만파운드의 손실을 냈다. 레볼루트는 주식, 가상자산 관련 서비스를 추가하고 미국과 아시아 등 해외 시장 진출도 추진 중이지만, 단기간에 수익성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영국에서 챌린저뱅크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나 신뢰도도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금융정보분석업체 파인더가 은행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전후 대형 시중은행의 만족도는 5%포인트 하락한 반면 챌린저뱅크를 포함한 온라인 전문은행의 만족도는 14%포인트 내려갔다.

◇ 정부 적극 지원 없으면 정착 역부족

금융 시장 일각에서는 국내 역시 챌린저뱅크가 도입돼도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과점 구도를 흔들 ‘메기’가 되기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7년 시중은행들의 과점 체제를 바꾸고 경쟁을 촉진하겠다는 취지로 출범한 인터넷은행들도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다.

가장 규모가 큰 카카오뱅크의 경우 지난해 9월 기준 총자산은 전체 은행 자산의 1.26%에 불과했다. 토스뱅크와 케이뱅크는 각각 0.84%, 0.4%에 그쳤다. 반면 5대 시중은행의 총자산은 70.73%에 달했다.

한 금융 시장 관계자는 “인터넷은행들은 국민 채팅앱인 카카오(카카오뱅크)와 KT(케이뱅크) 등 거대 기업을 모기업으로 두고도 출범 6년이 넘을 때까지 아직 미미한 점유율에 그치고 있는데, 신생 챌린저뱅크가 제대로 자리를 잡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며 “각종 정부 사업의 우선 선정과 규제 제외 등 실효성 있고 과감한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