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와 금융 당국이 연일 금융사의 과도한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서면서 은행의 고민이 깊어졌다. 은행권 일각에서는 지난해 7월 이후 한동안 안정적으로 관리됐던 예대마진을 흔든 것은 오히려 과도한 개입을 한 정부, 금융 당국이었다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과도한 예대마진을 축소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5대 은행 중심의 과점 체제를 경쟁 체제로 바꾸겠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인상됐지만, 정부의 요구대로 예대금리차를 관리해 왔다”며 “최근 정부가 연일 은행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실상 큰 폭의 예대마진보다 과도한 성과급 지급 문제 등으로 국민 정서를 자극한 게 원인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예대금리차, 공시 시작된 작년 7월보다 하락
16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하나은행, KB국민은행, IBK기업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의 지난해 12월 기준 가계예대금리차는 공시가 시작된 지난해 7월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KB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7월 가계예대금리차는 1.38%포인트에서 0.65%포인트로 0.73%포인트 하락했다. 시중은행 가운데 예대금리차가 가장 큰 폭으로 줄었다. 신한과 하나, IBK 등 다른 은행도 12월 예대금리차가 모두 1%포인트 밑으로 떨어졌다.
우리은행의 경우 가계예대마진이 7월 1.4%포인트에서 12월에는 1.3%포인트로 소폭 하락했다. 그러나 정책서민금융을 제외한 가계예대금리차는 0.77%포인트로 역시 1%포인트를 밑돌았다. 신용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높은 대출금리를 적용하는 소비자를 제외하면 주요 시중은행이 대부분 1%포인트 미만의 예대마진을 기록한 것이다.
가계대출금리는 지난해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대부분 5% 이상으로 올랐다. 그러나 저축성수신금리, 즉 예금금리가 4%대로 대출금리보다 더 오르면서 예대마진이 줄어든 것이다.
◇ 당국 “예금금리 인상 억제” 개입 후 12월 들어 상승세로
다만, 은행별 가계예대마진은 지난해 12월 들어 대부분 상승세로 바뀌었다. IBK기업은행의 경우 11월 0.24%포인트에서 12월에는 0.54%포인트로 0.3%포인트 상승했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도 0.2%포인트대의 상승 폭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금융 시장에서는 은행들의 수신 경쟁에 제동을 걸기 위해 당국이 개입한 결과 예금금리가 갑자기 하락하면서 안정적인 하락세를 보이던 예대금리차가 갑자기 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5일 “금융권의 과도한 자금 확보 경쟁이 금융 시장 안정에 교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과도한 경쟁을 자제하라”고 경고했다. 사실상 금리를 올려 예금을 유치하려는 은행들의 움직임에 개입한 것이다. 뒤이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수신금리 인상에 대한 자제를 권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금융 당국 수장들이 잇따라 은행에 대한 압박에 나선 것은 예금금리 인상으로 시중 자금이 1금융권으로 쏠려 금융투자 시장의 유동성이 빠르게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보통 예금금리가 떨어지면 대출금리 하락으로 이어지는데 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에 12월 들어 예대금리차가 갑자기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금융 시장 관계자는 “당국의 요구대로 대출금리 인상을 억제하고 예금금리를 올려 간신히 예대금리차를 줄여왔는데, 갑작스러운 예금경쟁 억제 압력이 나왔다”며 “정부와 당국의 근시안적인 개입이 금리를 불안하게 만드는데 한몫했다”고 말했다.
◇ “영업시간 정상화 반대·성과급·퇴직금에 괘씸죄”
금융권 일각에서는 최근 정부가 연일 은행에 대한 고강도 압박을 지속하는데 대해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예대금리차 문제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실상은 과도한 성과급과 퇴직금 지급 문제, 금융노조의 이기심 등이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고 보는 것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한·KB·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 총액은 1조3823억원으로 전년 대비 35.6% 증가했다. 이 은행들이 소속된 5대 금융지주사가 총 18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거두면서 은행들은 예년보다 훨씬 많은 기본급의 300~400% 수준의 성과급을 책정했다.
은행들은 희망퇴직을 통해 자발적으로 떠나는 직원들에게도 풍성하게 돈을 줬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말과 올해 초 5대 시중은행에서는 2200여명이 퇴직하면서 특별퇴직금을 포함, 1인당 평균 6억~7억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지난달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실내마스크 규제가 해제되자, 영업시간을 다시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환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이에 대해 금융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은행 영업시간 정상화는 한동안 진통을 겪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