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이 수수료·금리 인하에 앞장서고 있다. 금리 인상기 대출 상환 부담에 허덕이는 금융소비자와는 달리 은행은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이자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 여론이 확대되는 가운데 대통령마저 은행의 공공성을 강조한 데 따른 조치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온라인에 이어 오프라인 창구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체(송금) 수수료까지 만 60세 이상 고객을 대상으로 면제하기로 결정했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1일부터 모바일뱅킹 앱 ‘뉴쏠(New SOL)’과 인터넷뱅킹에서 타행 이체 수수료, 타행 자동 이체 수수료를 전액 면제한 바 있다. 이번 창구 송금수수료 면제에 따라 약 25만명의 고객이 혜택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시니어 고객들의 창구 송금 수수료를 없애 더 쉽고 부담없이 은행을 이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KB국민은행도 지난달 19일부터 모바일·인터넷뱅킹 타행 이체 수수료를 없앴다. NH농협은행 역시 모바일 뱅킹 이체 수수료를 면제하기로 했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각각 이달 8일, 10일부터 모바일·인터넷 뱅킹 타행 이체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은행권은 취약차주에 대한 지원도 늘리고 있다.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은 작년 말 취약 차주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1년간 한시 면제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신한은행은 작년 말 기준 가계대출(신용·전세자금·주택담보대출)을 보유한 신용등급 하위 30% 대출자를 대상으로 지난달 18일부터 중도상환 해약금(수수료)을 받지 않는다.
하나은행도 지난달 26일부터 ‘KCB 신용평점 하위 50% 차주’의 가계대출 중도상환 수수료를 면제했다. KB국민은행 역시 이달 10일부터 신용평가사 5등급 이하 차주의 가계대출 중도상환 수수료를 전액 받지 않을 예정이다.
아울러 은행권은 대출금리도 낮추고 있다. 은행은 대출금리 결정 시 임의로 덧붙이는 위험 가중금리인 가산금리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인하하고 있다. 대출금리는 기준금리에 은행권의 가산금리, 우대금리 등을 적용해 결정된다.
지난 3일 기준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연동)는 연 4.950∼6.890% 수준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6일 연 5.080∼8.110%과 비교할 때 상단과 하단이 각각 0.130%포인트(p), 1.220%포인트씩 하락했다.
지난달 13일 기준금리는 인상됐지만, 시장금리는 오히려 낮아진 셈이다. 특히 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같은 기간 0.050%포인트(신규취급액 기준 코픽스) 떨어졌다는 점을 볼 때 은행권의 가산금리 조정으로 인한 대출금리 인하 폭이 더 크다.
은행권이 각종 수수료 면제, 금리 인하 혜택을 내놓고 있는 데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0일 “금리 상승기 은행이 시장금리 수준, 차주 신용도 등에 비춰 대출금리를 과도하게 올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은행의 금리 산정·운영 실태를 지속해서 점검·모니터링해 미흡한 부분은 개선토록 하는 등 금리산정체계의 합리성·투명성 제고 노력을 지속해달라”고 했다.
이 원장은 지난달 16일에는 “은행은 국민 대부분을 대상으로 하는 일종이 서비스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은행이 발생한 이익의 3분의 1을 주주 환원, 3분의 1을 성과급으로 한다면 최소한 3분의 1은 국민들 내지는 금융 소비자들에 대한 몫으로 고민을 해야 되는 거 아닌가라는 게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은행의 공공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며 은행에 대한 당국의 시각이 더 분명해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은행이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투명하게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것이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금융권에서는 은행에 대한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는 데 대한 불만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업이 정부의 허가 산업인 만큼 어느정도 공공성이 있다는 것은 이해한다”면서도 “하지만 금융회사도 시장에 상장해 주식을 발행하고 주주가 있는데, 금리 산정부터 성과급, 배당, 사회공헌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건 과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