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주은행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단어가 있다면 ‘커뮤니티 뱅크(community bank·지역 공동체 은행)’다. 농협과 함께 제주도 내에서 양강(兩强) 체제로 경쟁하고 있는 이 회사가 지역 공동체를 강조하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먼저 거대 IT 기업의 금융업 진출이 가속화되고 전국 단위의 시중 은행들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주민·소상공인들과의 네트워크를 계속 유지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두 번째는 제주도를 찾아오는 ‘육지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을 상대로 영업 기반을 확대해 나가기 위해서는 결국 지역과의 관계에서 형성된 지식이나 서비스 역량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지역 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고, 그 과정에서 네트워크를 확보해 성장의 발판으로 삼겠다는 게 제주은행의 전략인 셈이다.

일종의 지역 밀착성 강화다. 제주은행은 이를 위해 새로운 형태의 비금융 서비스를 도입하고, 점포 운영 전략을 일신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한 이용자가 제주시 노형동의 식당 앞에서 제주은행이 만든 제주 여행 특화 애플리케이션 제주지니를 구동하고 있다. /제주은행

◇제주 여행객 15%가 쓰는 ‘제주지니’ 앱

이를 잘 보여주는 게 지난 2018년 말 첫선을 보인 제주도 관광 애플리케이션 제주지니다. 이 앱은 제주도 여행 정보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식당이나 카페의 경우 제주도 주민들이 알고 있는 ‘진짜 맛집’을 추려서 소개한다. 제주지니에 등록하고 앱 내부에서 마케팅을 하는 데 따로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 대신 제주은행 직원들이 자신들이 운영하는 서비스의 평판 관리를 위해 심사 과정을 둘 뿐이다.

이 밖에도 레저 시설 입장권, 렌터카 이용권 등도 사실상 ‘제주도 내 최저가’로 판매된다. 수수료를 받지 않으면서 업체들이 가격을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별, 시기별로 여행 코스 추천 등 제주 여행 콘텐츠도 만만치 많게 축적되어 있다.

제주은행이 운영하는 제주 여행 특화 애플리케이션 제주지니는 여행객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한다. /제주은행

연 수십억원의 인건비와 비용이 들어가지만 5년째 지역 상공인들에게 수수료를 받지 않고 투자를 이어가는 이유는 서비스 활성화가 더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제주지니 등록된 점포는 9월 말 현재 3260곳. 지난해 같은 기간(1640곳)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9개 영업점(출장소 포함) 직원들이 가세해 영업점 인근의 식당, 주점, 카페를 추천하고 등록했기 때문이다. 9월 순이용자는 20만1000명으로 전년 동기(13만8000명) 보다 45.4% 증가했다. 8월 순이용자(17만5000명)과 내국인 여행객(전체 127만4000명, 개별 114만7000명·제주특별자치도관광협회 집계)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전체 여행객의 13.6~15.2%가 이 앱을 사용한 셈이다.

제주시 연동에서 고기집 진돼지를 운영하는 윤형식씨는 “(홍보) 효과가 굉장히 좋다”며 “여행객뿐 아니라 도민들의 방문도 늘었다”고 제주지니 덕을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제주시 이도이동에서 브런치카페 라이터스블럭을 운영하는 김지은씨는 “제주도민이 보기에 요즘 괜찮은 곳, 핫(반응이 좋은) 곳을 추천해주어서 보는 사람들이 상당한 것 같다”고 했다. 김동헌 제주지니팀 팀장은 “대형 인터넷 포털을 통해 홍보할 수 없었던 영세한 가게들이 고객들을 만날 수 있는 접점을 확보하게 된 경우도 여러 건”이라고 귀띔했다.

/조선비즈

제주지니의 성공이 고객이나 매출 증가에 직접 도움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망 고객(은행 상품에 새로 가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 확보, 특히 제주도 이외 지역에 사는 잠재 고객층 공략의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제주은행의 판단이다. 제주은행이 지난해 2020년 말 출시해 꾸준히 고객을 늘리고 있는 여행 특화 신용카드 ‘제주지니 에어머니’가 제주지니를 브랜드로 내세우는 등 관련 마케팅에도 시동을 걸고 있다.

◇지역주민 사랑방으로 탈바꿈한 모슬포 지점

제주은행은 은행 점포를 리모델링해 지역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주요 지역에 흩어져 있는 점포 공간을 외부에 개방해 주민들과 접점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공연 및 회의 시설이 부족한 읍(邑) 정도의 지역을 대상으로 한 사회공헌활동 성격도 강하다.

9월 이전한 제주은행 모슬포지점은 전체 지점 공간의 3분의 2를 할애해 복합문화시설을 설치했다. 이 시설은 지역 주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된다. /조귀동 기자

지난달 이전한 모슬포지점은 새 점포 전략의 테스트베드다. 500㎡(제곱미터) 정도 되는 공간 가운데 3분의 2인 330㎡를 할애해 복합문화공간을 설치했다. 3곳의 회의실을 비롯해 탁자들이 비치되어 있어 평소에는 카페처럼 사용하지만, 100여명 규모의 공연장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모슬포항뿐만 아니라 9㎞ 떨어진 제주 영어마을 거주민들까지 겨냥한 시설이다. “인근 지역에서 창업한 젊은 소상공인들이나 문화예술인들이 한데 모여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김종신 사회공헌팀 팀장은 설명했다.

제주은행은 디지털 시대에 대응해 지역에 더 뿌리내리는 게 긴요하다고 본다. 한 제주은행 임원은 “금융이 디지털로 전환된다고 하지만 금융 서비스 경쟁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 지점에서 벌어질 것”이라며 “제주은행만의 경쟁 우위를 확보 가능한 고객 기반을 유지·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우혁 제주은행장은 “제주의 가치를 미래 전략의 핵심 요인으로 활용해 차별화 전략을 펼칠 것”이라며 “금융으로 지역 소상공인과 관광객을 연결하고 고객, 제주도, 제주은행이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고 설명했다. 제주은행의 행보는 지역은행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산업 구조 전환에 맞서는 적극적인 응전(應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