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경제가 1990년대 초반 일본과 유사하게 장기 불황에 진입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기 위축 국면에서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이 자산가격 버블 붕괴를 가져오고 결국 ‘잃어버린 10년’을 맞은 일본과 전 세계가 유사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16일 금융연구원의 ‘물가와 성장의 딜레마:반면교사 일본의 교훈’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경제가 1990년 초반의 일본과 유사한 상황이다.
일본은 1990~1991년 경기 위축이 시작되는 국면에서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국민 반발을 무마하고 임금 상승 압력과 엔화약세에 따른 물가 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기준금리가 기존 2.5%에서 6%로 상승하자 자산가격 버블이 붕괴되면서 일본은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기위축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진행되는 가운데 금리 인상을 단행하고 있는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는 1990년대 초반의 일본과 유사하게 장기불황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며 “‘성장과 물가의 딜레마’, 즉 물가를 잡다가 성장이 어려워지며 디플레이션(전반적인 물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현상)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진정되기 무섭게 글로벌 경제에 불황이 찾아왔고, 일본 역시 짧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장기 디플레이션에 빠졌기 때문에 전 세계가 이 같은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연구위원은 “최근의 상황이 1970년대에 비해 양호하지만,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취약하고 성장 전망이 불확실한 개발도상국의 경우 또다시 1970년와 같은 위기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경기 침체가 장기화돼 (짧은 스태그플레이션 이후 긴 디플레이션이 온다는) 가설이 현실로 다가오면 현재와 같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데 제동이 걸릴 뿐만 아니라 장기불황을 극복하고 가계부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해야 하는 시점이 찾아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연구위원은 “경제가 디플레이션 상황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전에 성장의 제약 요인이 무엇인지 점검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경제의 공급능력을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