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직장인 A씨는 최근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원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가 가상화폐 거래를 위해 만든 계좌 내 자금이 보이스피싱과 관련된 계좌로 출금됐다는 내용이었다. A씨가 자신의 계좌에 남아있던 금액은 약 2억8000만원 정도였다. A씨는 전화를 받고 수사기관에 보이스피싱 피해 신고를 접수한 뒤, 코인원의 협조를 통해 계좌 내 남은 금액을 무사히 보전할 수 있었다. A씨는 “하마터면 2억원이 넘는 큰돈을 잃을 뻔했다”고 말했다.
가상자산을 이용한 자금 세탁 등 금융 범죄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면서,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범죄 예방을 위한 인력 채용과 기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21일 블록체인 전문 분석업체 체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지난해 가상화폐를 이용한 자금 세탁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약 10조340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집계를 시작한 2017년 이후 최대 수치다. 현재까지 누적 자금 세탁 규모는 약 44조원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가상자산 이상 거래가 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감독원 조사에 따르면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우리은행과 신한은행 등을 거쳐 해외로 송금된 불분명한 자금은 8조5000억원 정도로 집계됐다. 아직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가상자산 거래소와 연루된 이상 거래 금액은 더욱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이에 국내 가상자산 거래 규모 1위 업비트는 고객확인제도(KYC)를 두고 요주의 인물(왓치리스트 필터링)을 판별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또 누적된 거래 데이터를 활용해 이상 거래 위험을 알아볼 수 있는 항목도 마련했다. 업비트는 이를 통해 회원들의 위험 여부와 위험도를 평가하고 있다.
금융 관련 범죄 예방을 위한 인력 보강에도 나섰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미래에셋증권에서 13년간 자금 세탁 방지(AML)를 전담한 준법지원실장을 영입했다. 업비트 관계자는 “자금 세탁 방지를 위해 업비트는 전통 금융권에서 평균 6년 이상 AML 업무를 담당한 인력들을 영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2위 가상자산 거래소인 빗썸도 올해 투자자 보호실을 마련하고 산하에 ▲고객지원센터 ▲시장관제팀 ▲자산보호팀을 구성했다. 또 이상금융거래탐지 시스템(FDS)을 통해 자금 세탁 징후가 보이면 이에 대해 대응할 수 있도록 체제를 마련했다.
빗썸은 투자자 보호실 출범 이후 금융사고는 지난해 대비 35% 감소했다고 전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10억원 상당의 보이스피싱 피해금을 고객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코인원도 지난해와 올해 AML 관련 인력을 대폭 보강했다. 지난해 1월 기준 코인원의 AML 관련 인력은 3명 정도였는데, 올해 8월에는 20명까지 늘어났다. 코인원은 NH농협은행과 협업해 6개월마다 자금 세탁 방지를 위한 시스템 실사에도 나서고 있다.
고팍스는 올 초 시중 은행에서 24년 동안 자금 세탁 방지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직원을 자금 세탁 방지 센터장으로 영입했다. 고팍스는 AML 전담 인력 21명을 두고 보이스피싱, 마약, 대출 사기 등 의심 거래를 24시간 모니터링하고 있다.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최근 금융 당국이 국내 거래소들에 대해 가상자산을 이용한 자금 세탁 방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금융 사고가 발생할 경우 거래소 역시 법적 책임이 돌아오기 때문에 앞으로 관련 인력 등을 보강하는데 투자를 늘릴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