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형 주택담보대출 금리와 변동형 금리의 역전현상이 일어났던 2018년 말. 이사를 앞두고 2억원 규모의 주택담보대출을 알아보던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고민 끝에 혼합형(5년 고정금리) 대출을 받기로 했다. 당시 이례적으로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0.5%포인트(p)가량 낮아 연간 약 100만원의 이자를 아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은행직원도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고정형을 선택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이씨는 곧 이 결정을 후회하게 됐다. 2018년 11월 1.75%였던 기준금리가 약 1년 반 만에 0.50%까지 하락하면서다. 2020년 3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코로나19 충격으로 경기 침체가 예상되자 1.25%였던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0%p 낮추는 이른바 ‘빅컷’에 나섰다. 같은 해 5월에는 0.25%p 추가 인하했다. 이후 기준금리는 지난해 8월까지 동결됐다.
최근 기준금리 상승세 속 몇몇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가 혼합형(5년 고정금리 후 변동금리로 전환) 금리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벌어지면서 금융 소비자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일반적인 경우 변동금리가 고정금리보다 낮은 경우가 많다. 이유는 두 가지다. 변동금리의 경우 은행이 만기를 짧게 잡아 자금을 조달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다. 또 고정금리는 금리 변동에 따른 손실 위험이 한쪽에 전가되기 때문에, 은행이 손실 가능성을 회피하기 위해 가산 금리를 더 붙이는 경향이 있다. 고정금리를 선택하는 금융 소비자는 대개 금리 상승을 예상하고 고르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금리를 가파르게 올리는 등 짧은 기간 단기채 금리가 치솟을 때다. 5년 만기 채권 금리 변동은 중기(3~5년) 정도 인플레이션과 성장률을 반영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상승폭이 작을 수 있다. 이 경우 변동금리가 고정금리보다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다.
통상적으로 이 시기엔 금리는 낮지만 연체 위험도가 높은 변동형 대출을 받은 차주들이 고정형으로 갈아타는 게 유리하다고 봐 왔다. 그러나 코로나19 등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이제는 이전과 같은 조언이 통하지 않게 됐다. 기준금리와 인플레이션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지 예측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의 자금 상환과 상환 기간 등을 고려해 변동·고정금리를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고정금리 갈아탔더니 코로나가… “차라리 평상시 금리 낮은 변동형 선택”
2016년 2월 모든 은행권에서 변동금리와 고정금리가 일제히 역전되는 현상이 일어났다. 고정금리로 돈을 빌려줄 땐 미래의 금리 상승에 대비해 변동금리 상품보다 더 비싼 이자를 받는 게 일반적이었던 은행 특성상 이례적인 일이었다. 당시 은행권 주택담보대출 고정금리는 최대 2%대인 반면, 변동금리는 3%대였다. 고정금리가 변동금리보다 더 낮아지면서 주요 시중은행에선 갈아타려는 문의가 20%가량 늘었다.
2018년 말~2019년 초에도 역전 현상이 일어났다. 전문가들은 2019년에도 금리 인상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변동형에서 고정형으로 갈아타는 것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2016년 6월 1.25%였던 기준금리가 2017년 11월 1.50%, 2018년 11월 1.75%로 인상되며 상승세로 전환하면서다. 그러나 코로나19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기준금리는 약 1년 반 만에 0.50%까지 하락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요즘 같은 금리 인상기에도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더 높아지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상 6월 기준 예금은행의 가계대출 잔액 가운데 변동금리 비중은 78.1%로, 2014년 3월(78.6%) 이후 8년 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출자들이 평상시 대출 시점의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변동금리를 선호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3억원 규모 주담대를 받으려는 8년차 직장인 김모씨는 “변동·고정금리 역전 현상이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고, 두 상품의 금리 차이도 크지 않다”면서 “당분간 기준금리 인상이 예상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금리가 다시 낮아질 수 있어 변동금리를 택하려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선 금리 인상기에는 변동금리 대신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는 중론을 따라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당장의 이자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가 가파르게 오른 데다, 경기 상황이 더 악화할 것이란 심리가 채권 시장에 반영되면서 변동금리 상단이 가산금리 상단보다 높은 역전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 개인별로 꼼꼼히 따져봐야… 자격 있다면 안심전환대출·보금자리론도 방법
전문가들은 대출 총량과 중도상환수수료 등 득실을 꼼꼼히 따져 유리한 상품을 골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론 금리가 하락세를 이어왔기 때문에 변동금리형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사실상 유리했다”면서 “그러나 한국은행이 7월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를 0.50%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밟는 등 금리 상승 시그널이 이어져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보통 1년 이상 금리 상승이 지속된다는 가정 아래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간 격차가 1%포인트 이내일 때는 고정금리가, 이 이상 차이가 날 경우 변동금리가 유리하다고 본다”면서도 “실제 고정금리와 변동금리 차이는 상품별·개인 경제 상황별로 천차만별인 만큼 여러 곳에서 충분히 상담한 후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결정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자격요건을 갖췄다면 고금리 변동금리 대출을 저금리 고정금리 대출로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을 신청할 수 있다.
시가 4억원 이하 주택 소유자(대출 2억5000만원 이하)로서 부부 연소득 7000만원 이하 차주가 대상으로, 금리는 신청 시점인 9월 보금자리론보다 0.45~0.55%포인트 낮은 수준에서 결정된다. 또 변동금리 주기를 최대한 길게 잡거나, 신(新)잔액 코픽스 금리를 기준으로 하는 상품을 택해 금리 인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법도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가 출시한 50년 만기 보금자리론과 적격대출은 대출금리가 연 4.85%로 책정됐다. 50년 만기 정책모기지 상품을 연 4.85%, 원리금균등상환방식으로 이용하는 고객이 3억원을 대출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월상환금액은 133만원이다. 40년 만기(연 4.83%·원리금균등상환방식) 시 월상환액 141만원보다 원리금 상환 부담이 연간 96만원 줄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