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이 더 오를 것이란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달러화 예금 상품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면서, 은행들의 외화예금 고객 잡기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지난주 대비 11.2원 급등한 1342.5원에 출발해 장 중 1349원을 돌파했다. 지난 23일 기록한 연고점(1346.6원)을 경신한 것이다. 지난주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통화긴축 선호(매파적) 기조를 확인한 영향으로 보인다.

29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1.2원 오른 달러당 1342.5원으로 출발해 장중 연고점을 경신하고 1349원을 넘어섰다. /연합뉴스

일반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환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달러화를 파는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최근 시장에서 환율이 더 오를 것이란 기대심리가 생기면서 예금이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외국환은행의 거주자 외화예금은 903억8000만달러로 전월보다 33억2000만달러 증가했다. 여기서 거주자는 내국인, 국내기업, 국내 6개월 이상 거주한 외국인, 국내 진출 외국 기업을 통칭한다. 기업들이 원·달러 환율이 더 상승할 것으로 보고 수출대금 현물환 매도를 늦추면서 예금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법인 뿐만 아니라 달러화 예금에 관심을 갖는 개인들도 부쩍 늘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배순창 SC제일은행 수신상품부장은 "글로벌 경제의 변동성이 커지고 미국 달러화가 고공행진을 하면서, 달러화 예금상품을 찾는 고객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외화 예금 고객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NH농협은행은 최근 법인 전용 입출식 외화예금 'NH플러스외화MMDA'를 출시했다. 단기간 외화 자금을 운용해 자금을 관리하고자 하는 외환 거래 법인의 수요를 반영해 출시한 상품으로, 예금을 인출할 때 원금과 이자를 함께 지급한다. 금리는 통화별·금액별 차등 적용된다. 미 달러(USD) 100만달러 이상 예치 시 연 1.91%(세전)의 금리를 적용한다.

KB국민은행은 내달 말까지 외화정기예금 특별 판매 '굴리고 불리고 외화정기예금' 이벤트를 진행한다. 이벤트 기간 중 사업자 고객이 'KB수출입기업우대 외화통장'을 최초 개설한 뒤 외화정기예금에 가입하는 경우 90% 환율우대 혜택도 제공한다.

우리은행의 '우리 더(The)달러 외화적립예금'은 현찰 수수료를 면제해주는 상품으로, 연말까지 환율 우대율을 기존보다 30%p 확대해 80%를 적용하는 이벤트를 진행한다. 적용 금리는 가입 기간별로 다르다. 29일 기준 거주자 대상 1개월~2개월 금리는 2.3401%이고, 3개월~6개월은 2.9382%, 6개월~1년 3.4265% 등이다.

하나은행은 '하나 밀리언달러 통장'을 신규 개설한 손님을 대상으로 국제학생증 ISIC 무료 발급 서비스를 이달까지 제공한다. SC제일은행은 미 달러화 외화정기예금 가입 고객에게 최고 연 3.5%(세전) 특별금리를 제공하는 이벤트를 이달 26일까지 실시했다.

지난해 연말 1188.8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은 '심리적 지지선'으로 불리는 1200원을 넘어 1300선을 뚫었다. 지난 23일 장중 연고점인 1346.6원을 기록한 데 이어 29일 오전 10시37분 1349원까지 올랐다.

앞서 전문가들은 '연내 1350원 돌파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한 바 있는데 예상치에 근접한 것이다. 미국이 통화 긴축 기조를 이어가고 있어 달러 강세 기조를 꺾을 만한 모멘텀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기다.

전규연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미 달러는 연준의 정책 기조와 미국과 유럽의 체력 차이를 반영해 강보합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면서 "달러-원 환율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레벨 부담도 점차 커지고 있어 1차 저항선은 1350원 수준으로 판단하며. 저항선 돌파 시에는 1365원 수준까지 상단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달러화 예금은 예금자 보호 대상인 정기예금이다. 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면서 원·달러 환율이 더 오르면 환차익도 볼 수 있다. 돈을 넣어뒀다가 환율이 올랐을 때 돈을 빼 이익을 보는 구조인데, 환차익에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 하지만 달러 환율이 이미 급등해 부담이 따른다. 달러 강세 기조가 완화하는 등 시장의 여러 변수로 환차익 기대보다 이득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외화 예금은 환전수수료와 인출 수수료가 붙기 때문에 이 점도 주의해야 한다.

한편,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 26일(현지시각) 잭슨홀 미팅 연설에서 시장의 예상보다 강경한 통화 긴축 발언을 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을 낮추려면 당분간 제약적인 정책 기조 유지가 필요하다"며 "40년 만에 최고 수준에 근접한 인플레이션을 공격하기 위해 중앙은행이 우리의 도구를 강력히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중앙은행이 미국 경제에 '약간의 고통'을 초래할 방식으로 금리를 계속 인상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