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상반기에 한 차례 인하됐던 자동차보험료가 올해 안으로 더 낮아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손해보험사들이 올 들어 ‘역대급’ 실적 개선에 성공하면서 자동차보험료를 더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지만, 최근 폭우 사태로 침수차가 급증하자 금융 당국은 추가 인하를 논의하기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
18일 금융감독원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손보사들에게 올 하반기 자동차보험료 인하를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상반기 손보사들이 자동차보험 사업에서 실적이 개선됐지만, 이번 침수 사태처럼 하반기에 다른 돌발 요소가 생길지 몰라 보험료 조정을 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반기까지 손해율 모니터링을 해야 보험료 관련 방침을 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나오는 관련 통계를 살펴본 뒤 내년 상반기에 손보업계와 보험료 조정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위원회도 자동차보험료 조정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보험료 조정과 관련한 방침과 가이드라인은 따로 없다”며 “자동차보험이 의무보험인 만큼 업계가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금융 당국이 내년 상반기에 보험료 조정을 다시 논의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하면서 보험업계는 한숨을 덜게 됐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금융 당국은 보험사들에 올 하반기 중 자동차보험료를 인하하라고 요구해 왔다. 손보업계가 상반기에 큰 수익을 거둔 만큼 보험료를 낮춰 물가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 부담을 덜어 달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삼성화재와 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메리츠화재 등 5대 손보사들의 올 상반기 합계 순이익이 2조5673억원을 기록, 사상 처음으로 2조원을 돌파했다.
통상 자동차보험의 적정 손해율은 78~80%로, 이 수치가 적정 수준을 밑돌 경우 손보사들은 양호한 실적을 달성한 것으로 평가된다. 손해율은 가입자들로부터 거둬들인 보험료에서 사고 등으로 인해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을 뜻한다. 손해율이 내려갈수록 보험사들의 수익은 증가하는데, 올 상반기 대형 손보사 대부분이 70%대를 기록했다.
이에 대해 손보사들은 이미 올 상반기에 자동차보험료를 4년 만에 1%대 수준으로 인하한 적이 있어 하반기에 추가로 인하하는 것은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손보사들은 최근 집중호우 사태로 큰 침수 손해를 입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손보업계에 따르면 호우가 시작된 지난 8일부터 17일 오전 10시까지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는 손보사 12곳에 접수된 침수 차량은 1만1488대, 추정 손해액은 1620억원이다. 같은 기간 삼성화재·현대해상·DB손해보험·KB손해보험 등 4개 대형 손보사의 경우 침수 차량은 9765대, 추정 손해액은 1377억원이었다.
손보업계 일각에서는 오히려 하반기에 자동차보험료를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금융 당국이 올 하반기 인하를 포함해 인상 자체도 논의하기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실제 인상 가능성은 희박해진 상황이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계절적 요인으로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상반기보다 하반기에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보험료 조정은 연간 누적 손해율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번 침수 사태로 손보사의 손해율이 크게 상승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주요 손보사들이 재(再)보험사인 코리안리를 통해 이미 돌발 재해에 대한 위험에 대비해 손실이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코리안리 관계자는 “손보사와 초과손해액재보험 계약을 통해 한도를 넘어가는 피해액을 전부 보상해주고 있다”며 “재보험사도 해외 재재(再再)보험사를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