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가상자산 시장을 관통하는 흐름은 ‘제도화’다. 금융당국의 규제가 하나씩 생겨나고, 국회 입법이 추진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가상자산 거래소를 중심으로 한 주요 회사들은 다양한 신사업을 펼치면서 계열사가 늘어나고, 복합대기업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글로벌 유동성 축소 여파로 가상자산 시장이 찬바람을 맞고 있지만, 산업의 질적 도약은 오히려 본격화된 셈이다.

일종의 ‘회색지대’에서 다양한 배경의 인물들이 기업을 세우고, 투자를 유치하고, 큰돈을 벌었던 가상자산 산업이 매끄럽게 양지로 나올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이 있다. 가상자산 업계가 규제에 대해 ‘회피하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사업 방식뿐만 아니라 자금 조달과 대주주 구성이나 계열사 간 거래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금융산업의 레토릭을 빌려다 쓴 것과 달리 법적 리스크를 늘 안고 살다시피 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대표 회사들이 어디까지 와있는 지 조망해 본다. [편집자 주]

빗썸은 국내 2위 가상자산 거래소다. 하루 평균 거래 대금 지난 3월 기준으로 1조4000억원 정도다. 한때 전체 가상자산 거래의 70%가 이뤄지는 1위 거래소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홍콩에서 시작된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소 FTX가 인수를 타진하고 있다. 하지만 빗썸의 장래가 마냥 밝다고 이야기하는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드물다. 빗썸 임직원도 제대로 모르는 불투명한 지배구조 때문이다.

코스닥 시장 상장사 가운데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순환출자 끝에는 실소유주가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은 특수목적회사(SPC)가 자리 잡고 있다.

지난 6월 20일 서울 서초구의 가상화폐 거래소인 빗썸 고객센터 스크린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시세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이유로 빗썸이 가상자산 거래소와 관련 산업이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큰 곤란을 겪을 수 있다는 예상이 일각에서 나온다. 금융 규제의 핵심 중 하나는 건전한 지배구조인데, 빗썸이 그 기준에 맞출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주기적으로 매각설이 나오지만 좀처럼 새 주인을 찾지 못하는 것도 난해한 지배구조 탓이다. 업계에서는 빗썸이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하거나 전통적인 거래소 사업을 벗어나 신사업에 진출하려면 엉킨 지배구조 실타래를 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 얽히고설킨 복잡한 지배구조… 실소유자 불명확

빗썸의 최대 주주에 대해서는 누구도 모른다. 심지어 빗썸 임직원들에게 물어도 “우리는 모른다”는 답을 들을 뿐이다.

빗썸을 운영하는 회사는 빗썸코리아다. 이 회사의 최대 주주는 빗썸홀딩스다. 그리고 빗썸홀딩스는 방송용 고성능 영상기기 업체 비덴트(지분율 34.22%), 디에이에이(DAA·29.98%)와 싱가포르 법인 BTHMB홀딩스(10.70%) 등 주요 주주들이 74.90%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정확한 소유주가 드러나지 않는 기타 주주도 25.10%를 차지한다.

그래픽=이은현

비덴트는 코스닥 상장사다. 최대 주주는 역시 또 다른 코스닥 상장사 인바이오젠(지분율 17.77%)이다. 인바이오젠의 대주주는 지분율 33.83%의 영상물 제작·유통회사 버킷스튜디오다. 그리고 버킷스튜디오의 주주는 이니셜1호투자조합(17.76%)과 이니셜2호투자조합(8.58%), 그리고 앞서 언급한 비덴트(8.58%)다.

‘이니셜 1호·2호 투자조합→버킷스튜디오→인바이오젠→비덴트’ 구조인데, 정작 이니셜 1호·2호 투자조합의 주요 투자자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베일에 쌓여 있다. 이니셜 1·2호 투자조합의 근간이 되는 이니셜의 대표 겸 버킷스튜디오 강지연 사장은 현재 빗썸홀딩스의 사내이사를 맡고 있다.

다른 한 축인 DAA의 소유주는 BTHMB홀딩스로 알려져있다. 그리고 BTHMB홀딩스의 소유주는 역시 싱가포르 소재 SPC인 SG브레인테크놀로지다. SG브레인테크놀로지의 원래 이름은 ‘SG BK’였다. SG테크놀로지의 소유주는 이정훈 전 의장으로 알려졌다. 크게 보면 비덴트 계열과 DAA 계열로 나누어 볼 수 있는 게 빗썸홀딩스의 지배구조다.

하지만 두 계열 모두 실소유주가 누구인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나마 DAA계열의 경우 이정훈 전 의장이 “제가 절반 가까이 의결권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본인이 통제권을 쥐고 있다고 밝혔지만, 명확한 지분 관계는 공개하지 않았다. 상황이 이와 같다 보니 빗썸 임직원들도 대주주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지 말하지 못한다. “모른다”가 정답이다.

빗썸 사정을 아는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각 출자 고리마다 복잡하게 얽혀진 지분구조에다가 여러 이면 계약까지 얽혀 있는 관계”라며 “다양한 관계자들이 빗썸홀딩스 지분을 가진 구조”라고 설명했다.

◇ 누구도 전말 모르는 ‘깜깜이 경영권 분쟁’ 잇따라

빗썸 경영권은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철저하게 ‘그들만의 리그’로 남았다. 경영권 분쟁이 잇따르지만, 그 경과는 제대로 모르는 일부 코스닥 상장사의 행태가 그대로 펼쳐진 셈이다.

2014년 빗썸의 전신인 ‘엑스코인(xcoin)’이란 가상자산 거래소를 세운 김대식 전 사장은 2017년 지분을 넘겼다. 이때 빗썸 지분을 가지게 된 사람이 이정훈 전 의장과 김재욱 아티스트컴퍼니 사장이다.

서울 강남구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 고객센터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뉴스1

이 전 의장은 2002년 게임 아이템 매매 중개 서비스 ‘아이템메니아’를 운영하는 아이엠아이(IMI)를 창립한 뒤 2014년 이를 매각해 큰돈을 벌었다. 그는 2016년까지 IMI 사장을 역임했다. 2017년부터 빗썸의 최대 주주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전 의장과 합작해 SG브레인테크놀로지와 BTHMB를 통해 빗썸을 소유하려고 했던 이가 김병건 BK그룹 회장이다. 두 사람은 한때 ‘빗썸코인’이라 불리기도 했던 가상자산 ‘BXA토큰’을 BTHMB홀딩스를 통해 발행한 뒤, 빗썸을 통해 상장해 수천억원대의 이익을 낸 뒤 그 수익을 나누기로 했다. 그리고 그에 필요한 자본을 김병건 회장이 대기로 했다.

하지만 BXA토큰은 상장되지 못했다. 빗썸 인수 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계약금 1억달러(1300억원)을 납부한 김 회장은 추가 대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계약금을 날렸다. 그는 이 전 의장이 자신을 속이고 계약금을 몰취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이후 검찰은 지난해 7월 이 전 의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 전 의장과 빗썸 측은 BXA토큰은 그들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소송 과정에서 이 전 의장은 2020년 빗썸홀딩스 이사회 의장으로 취임했으며, 자신이 빗썸 최대 주주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한편 2017년 등장한 김재욱 사장은 김상우 제이에스아이코리아 대표 등 다양한 인물들을 대표하는 자격으로 빗썸 경영에 참여했다. 김재욱 사장과 김상우 대표는 각각 50%씩 지분을 투자한 ‘비트갤럭시아1호투자조합’을 결성한 뒤, 이 SPC를 거쳐서 비덴트를 인수했다. 그리고 김상우 대표가 최대주주인 코스닥 상장사 위지트가 비덴트와 함께 모바일 쿠폰 회사 옴니텔을 사들였다. 두 사람은 옴니텔을 통해서도 빗썸홀딩스 지분을 사들였다. 또 비덴트가 발행하는 전환사채 625억원어치를 2019년 12월 코스닥 큰 손으로 알려진 원영식 W홀딩컴퍼니 회장이 소유한 아이오케이가 매입해 대규모 자금 지원을 하기도 했다.

김재욱 사장과 김상우 대표 측 지분은 2020년 8월쯤 정리된다. 이정훈 전 의장이 2017년 옴니텔 사외이사를 맡았던 데에서 드러나듯 그와 김재욱 사장 및 김상우 대표의 관계는 긴밀했다. 그러다가 김재욱 사장은 2017년 빗썸 사장을 맡았지만, 이듬해 물러났다. 김 사장은 2019년 12월 이 전 의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정도로 서로 벌어졌다.

당시 김재욱 사장과 이 전 의장은 경영권 분쟁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의장의 BTHMB홀딩스가 빗썸홀딩스의 주식 2324주를 인수하며 지분율을 32.74%로 늘리자 김 사장이 이에 대해 반발하며 지분인수 취소 소송에 나선 것이다. 당시 비덴트 측은 “국세청이 빗썸에 803억원에 달하는 과세를 매겼지만 이를 알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지난 2020년 10월, 인바이오젠 대표에서 물러나며 강지연 버킷스튜디오 사장에게 자리를 넘겼다.

이들의 지분이 정리된 것은 2020년 미국 바이오 신약 개발회사로 알려진 프로페이스 사이언시스가 자동차 시트 제조회사 이원컴포텍을 인수하면서다. 프로페이스 사언시스의 대주주는 지분 53%를 가진 헬렌 킴이라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원컴포텍은 비트갤럭시아1호투자조합 지분을 사들였으며, 이를 가전제품이나 주방기구를 판매하는 중소기업 이니셜에 매각했다.

최근에는 장현국 위메이드 사장이 빗썸 주주가 됐다. 장 사장은 지난해 7월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총 800억원을 비덴트에 투자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에는 비덴트, 10월에는 빗썸코리아의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 사공 많으니 모회사 지원하고 엉뚱한 곳에 투자

빗썸은 코스닥 회사들과 얽히고설킨 관계와 불투명한 지배구조가 단단히 발목을 잡고 있다. 빗썸은 오래전부터 기업 인수 시장에서 매물로 나오곤했다. 하지만 지분 관계를 정리할 뚜렷한 해법이 없어 번번히 무산됐다.

몇 해 전 빗썸 매입 작업에 참여한 한 관계자는 “이면계약 등 복잡한 계약 관계가 있는 데다 이해관계자도 많아서 결국 포기했다”고 말했다. 신사업에 진출하거나 이를 위해 새로운 투자자를 구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는 게 가상자산 업계 일각의 관측이다.

오히려 주요 주주들이나 모회사들과의 관계 때문에 엉뚱한 곳에 투자하는 경우도 있다. 아시아에스테이트라는 부동산 투자 자문회사에 220억원을 투자했는데, 90억원 손실을 본 게 대표적이다.

모회사들이 재무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모회사 자금 수혈에 동원되기도 한다. 빗썸홀딩스는 2018년 아티스란 사명을 쓰던 인바이오젠이 발행한 전환사채 270억원을 매입했다. 당시는 가상자산 시장이 가격 하락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다.

이정훈 전 의장은 빗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5월 IMI 출신인 이재원 신임 사장과 김상흠 신임 이사회 의장이 각각 선임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 전 의장 라인을 강화해 지배구조도 단순화할 목적으로 보인다”며 “빗썸을 괴롭혀 온 두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도 비슷한 움직임은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에서도 빗썸의 복잡한 지배구조의 문제를 알고는 있으나 쉽사리 손 댈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현재 거래소를 규제하고 있는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은 지배구조 문제를 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당국 관계자는 “현행 특금법은 자금세탁방지를 목적으로 두고 있기에 주주 관련 조항이 없다”며 “현행 제도로 이런 부분을 짚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뭐라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라며 “업권법 제정 등 논의되는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