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현철 변호사는 지난 15일 조선비즈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난 몇 년간 국내 금융 시장에서 가상자산 분야는 사실상 방치돼 있다 싶을 정도로 아무런 제도나 규제가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가상자산을 건실한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규제와 법안 도입을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무법인 이제에서 미국 변호사로 일하는 주 변호사는 지난 17년 동안 기업 인수·합병(M&A)과 국제 분쟁, 기업 자문 전문가로 활동해 왔다. 가상자산 관련 업무를 본격적으로 담당한 것은 3년 전부터다. 그는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1분과에서 유일한 가상자산 담당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다음은 주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루나-테라’ 사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루나와 테라 코인은 문제가 많았던 가상화폐였다. 루나와 테라 사태로 국내에서 투자자들이 큰 피해를 본 것은 가상자산에 대한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증권의 경우 공시제도나 투자 설명서를 통해 투자자들에게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데, 가상화폐는 그렇지 않다. 그러다 보니 투자가 아닌 ’투기’의 모습으로 투자자들이 많이 뛰어들었다. 정확한 정보 및 규제 미흡으로 이번 비극이 발생했다.”
가상화폐는 왜 투기라고 보나.
“시장에 충분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하는 투자를 투기라고 한다. 가상자산은 현재 정보 자체가 없다. 누구나 백서(White Paper) 한 장으로 코인을 만들 수 있고, 이것이 훌륭한 사업인 것처럼 꾸며낼 수 있다. 제대로 된 검증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증권이 상장할 경우, 투자 설명서 등 여러 정보를 게시해야 하는데, 가상화폐는 비슷한 규제도 없다. ‘정보 비대칭성’ 문제도 짚고 싶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유명한 코인 빼놓고는 정보가 공시된 가상화폐는 드물지 않나.”
가상화폐 시장에서는 왜 정보비대칭 현상이 나타나나.
“앞서 말했듯이 일반적인 주식과 다르게 가상화폐는 시중에 제공된 정보가 적다.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는 것은 매우 큰 리스크다. 주식은 관련 회사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거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들어가 정보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가상화폐에 대한 정보는 생성되는 곳이 전혀 없다. 오히려 가짜 정보를 제공하는 코인 리딩방 등이 성행해 시장이 점점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가짜 정보를 생성해도 이에 대한 처벌조차 없는 현실이다.”
규제 미흡에 대해 정치권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미흡 정도가 아니라 ‘대실패’다. 사업자들에게 가상화폐 거래소를 개설 인가를 내줬는데, 이 뜻은 시장에서 거래를 해도 된다는 허락이 아닌가. 현재 가상자산 시장 규모는 약 55조원으로 추산된다. 시장이 이만큼 커질 때까지 어떠한 규제를 만들지 않은 것은 방임이나 다름없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투자자 보호의 차이는 무엇인가.
“미국은 법원의 판례에 따라 소비자 보호가 가능하다. 미국은 관습법(Common Law) 체계를 따르고 있는데, 가상자산 관련 법이 없더라도 비슷한 판례에 맞춰 피해를 야기한 이들을 증권거래법 등을 적용해 처벌하는 식이다. 반면 한국은 가상자산이 증권에 해당하는지를 행정부가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부의 판단이 없는 지금, 한국 국민은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가상자산 규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인가.
“디지털 자산법 마련 등 투자자 보호에 대한 법률 마련이 시급하다. 투자자 피해가 너무 크지 않나. 루나 사태로 입은 피해는 전 세계적으로 약 50조원으로 추산되는데, 대한민국 국민의 피해는 지금 산출조차 못 하고 있다. 5% 정도로 가정하더라도 피해액은 2조5000억원 정도다. 지난 라임펀드 사태로 야기된 피해는 1조6000억원 정도다. 이 피해는 누가 보상해주며 또 비슷한 상황이 발생해도 보호해 줄 법적 체계가 없다.”
바람직한 가상자산 규제는 무엇인가.
“가상자산 시장이 빠르게 변하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가상자산마다 성격을 구별하기보다는 원칙을 정해두고 이를 유연히 적용하는 방안을 택해야 한다. 가령 특정한 성격을 지니는 모든 가상자산을 증권으로 해석해 증권법을 적용하거나 하자는 의미다.”
인수위에선 어떤 논의가 오갔나.
“좋은 규제를 만들어서 시장을 육성하자는 논의가 있었다. 가상자산의 효율성과 편리성을 살리면서 효과적인 규제를 만들자는 것이 핵심이다. 갑작스러운 규제 도입으로 시장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규제 특례(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하지만 가장 시급한 것은 ‘증권형 코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다.”
증권형 코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도 국제 시장과 호환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맞다. 따라서 미국 법원이 증권성을 판단할 때 사용하는 ‘하위 테스트(Howey Test)’ 해석을 도입도 고려할만하다. 미국이 가상자산 시장을 선도하는 금융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하위 테스트는 미국 대법원에서 4가지 기준에 해당할 경우 투자로 보아 증권법을 적용하도록 하는 테스트다. ▲투자자금(Investment of money)이 ▲공동의 사업(common enterprise)에 ▲타인의 노력으로(derived from the efforts of others) ▲수익이 창출될 것이라는 합리적 기대(reasonable expectation of profits)가 있을 경우, 미국은 증권법을 적용한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투자자 보호에 미흡했다는 비판도 많다.
“동의한다. 그동안 거래소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충실히 이행하지 못했다. 거래소라는 곳은 단순히 상품을 유통시키는 곳이 아니다. 그들이 거래하는 상품은 소비자를 보호하는 범위 내에서 존재해야 한다. 그들이 투자자 보호를 위해 어떤 방침을 해왔는지 돌이켜 봐야 한다.”
가상자산 거래소들이 모여서 자율 규제안을 만들었다.
“긍정적인 면은 있다. 그러나 회의적인 느낌도 든다. 지난 5년 동안 자율 규제를 거래소들이 못해왔는데, 이번 5개월 안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진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상장하는 코인 수가 많아야 거래량도 늘고 또한 거래소들의 수익도 증가한다. 자신들 수익에 위협을 가하는 방침을 제대로 만들까 하는 의문도 든다. 과거에 루나 거래량이 급증할 때, 거래소들은 자신들의 이득을 포기해가며 이에 대한 보호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 따라서 거래소들의 자율 규제안 외에도 금융 당국의 규제 등도 마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지난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플랫폼 사업 시대엔 영어권 국가들이 제패하기 좋았다. 영어 기반의 서비스가 세계적으로 호환되면서다. 그러나 가상자산 시장은 한국이 석권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 디지털 가상자산 시장은 숫자로 표현되는 세계다. 최근 전 세계를 강타하는 한류 붐을 이용한다면 메타버스(가상세계), NFT(대체불가토큰) 시장 진출에 용이할 것이다. 건실한 규제 도입을 통해 시장을 육성시킨다면 한국이 디지털 가상자산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