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경쟁 효과요? 연초와 비교하면 의외로 신용대출 문턱이 좀 낮아지긴 했네요. 하지만 금리가 더 오른다고 하니 엄두가 안 나네요.” 고(高)신용자군에 속하는 7년차 직장인 A씨(KCB 신용점수 922점)의 얘기다. 현재 3억원의 전세대출을 보유 중인 30대 직장인 A씨가 이달 1억원을 빌릴 수 있는 신용대출 상품의 금리는 연 8.77%(토스뱅크)로 조사됐다.
2년 만기, 만기 일시 상환 고정 금리 조건이라고 가정할 때 대출 이자는 1745만원이다. 첫 달부터 73만833원씩 23회 내고, 마지막 달 1억73만833원을 갚는 식이다. 2년 만기 원리금 균등 상환 조건이라면 월 455만7929원씩 갚아야 하고, 총이자액은 939만287원이 된다. 5년 만기 원리금 균등 상환일 경우 매달 206만4691원씩 상환하는데, 총이자액은 2388만1442원으로 늘어난다.
최근 시중은행, 저축은행, 카드사들이 신용대출 상품 만기를 늘리고 우대금리를 확대해 대출 금리를 낮추며 대출 영업에 주력하고 있지만, 금리가 빠르게 오르면서 금융 소비자들의 대출 심리도 얼어붙고 있다.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고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금융 소비자들의 대출 부담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8일 조선비즈가 핀테크기업 핀다에 의뢰해 이달 초 1·2금융권 53개 기관의 신용대출 상품의 금리 및 한도를 지난 1월과 비교해봤다. KB국민·신한·우리·NH농협· 한국씨티은행은 조사 대상에서 빠졌다.
현재 3억원의 전세대출을 보유 중인 A씨가 이달 1·2금융권 53개 기관에서 신용대출로 1억원을 빌릴 때 가장 낮은 금리 조건은 연 4.3%에 대출 한도 6300만원(BNK경남은행)으로 나타났다. 지난 1월 그가 이용할 수 있는 최저 금리 신용대출 상품이 연 4.73%에 대출 한도 7000만원(DGB대구은행)이었다.
5개월 만에 최저 금리는 0.43%포인트(p) 낮아지고, 대출 한도는 700만원 줄었다. 지난 1월 A씨가 1억원을 모두 빌릴 수 있는 상품의 금리 조건이 연 10.2%(DGB캐피탈)이었는데, 이와 비교하면 금리가 오히려 1.43%p 줄었다.
올해 들어 가계대출이 감소세를 보이면서 은행권이 연초보다 대출 문을 더 열고 금리 경쟁을 하는 영향으로 분석된다. 특히 케이뱅크,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으로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중금리 대출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축은행, 카드사의 금리 인하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게 업계 진단이다.
실제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달 저축은행 36곳이 신규취급한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연 14.51%로, 전월 평균금리 연 14.81%보다 0.3%p 내렸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4월 7개 전업카드사의 카드론 금리는 연 12.98%로 1월(연 13.66%)보다 0.68%p 내렸다. 이에 저축은행과 카드사 등 업계 일각에서는 출혈 경쟁, 역마진 우려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나, 금융 소비자들이 느끼는 대출 벽은 여전히 높다.
고신용자보다 신용점수가 낮은 중저신용자의 이자 부담은 더 크다. 현재 약 2000만원의 신용대출을 보유 중인 KCB 신용점수 700점대 직장인 B씨가 1억원을 빌리려고 보니, 최저 금리가 6%부터 시작됐다. 대출 한도도 팍팍했다. 6.47% 금리로는 250만원(DGB대구은행)을 빌릴 수 있고, 그다음 낮은 금리가 연 12.6%에 대출 한도 7000만원(한국투자저축은행)이었다. 이보다 높은 13%대 이자율로 빌릴 수 있는 돈은 1500만원~3000만원에 그쳤다.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은행 신용대출 한도를 연소득 이내로 제한하도록 한 조치를 내달 해제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올해 하반기부터 신용대출의 연봉 한도 규제가 풀릴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내달부터 한층 강화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규제가 적용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DSR 규제는 1년 동안 갚아야 하는 대출이자와 대출 원금이 소득과 비교해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해, 소득의 일정 비율 이상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다. 전세자금대출을 제외한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마이너스통장, 자동차 할부금, 카드론 등 모든 대출이 포함된다.
7월 도입 예정인 3단계 규제가 시행되면 DSR 적용 대상이 총대출액 현행 2억원 초과에서 1억원 초과 차주로 확대된다. 현재는 총대출액이 2억원이 넘으면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연소득의 40%(제2금융권 50%)를 넘지 못하는데, 내달부터 이 기준이 ‘1억원 초과’로 바뀐다는 얘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금리 인상에 대한 심리적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 최대한도까지 꽉 채워 신용대출을 받으려는 소비자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인터넷은행 쪽에서 가계대출이 늘고 있어 상쇄한다고 해도 은행권 전반의 가계대출 감소세가 당분간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