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근로자의 나이만을 기준으로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국책은행 노동조합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시중은행에 비해 임금피크제 대상 인력이 많은 국책은행이 대응 방안 마련에 나서면서 임금 삭감분 반환에 대한 소송이 증가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이 55세에서 60세로 연장되면서 늘어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노사가 합의한 일정 연령이 되면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로 지난 2016년 도입됐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국금융산업노조는 이달 8일 ‘임금피크제 무효 대법원 판결 의미와 법률 대응 방안 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노조가 이 설명회에 참석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산업노조 관계자는 “각 지부에 설명회에 참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며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소속 변호사가 참석해 관련 설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설명회에서는 최근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관련 판결에 대한 법률적 분석이 진행될 예정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달 26일 퇴직 연구원 A씨가 한국전자기술연구원을 상대로 “연령만을 이유로 노동자를 차별한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 위반”이라며 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정년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나이가 찼다는 이유로 임금을 삭감하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무효로 판단한 것이다.
국책은행 노조는 이번 설명회 이후 본격적인 임금피크제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 국책은행 노조 관계자는 “일단 금융노조 차원에서 임금피크제 관련한 큰 틀을 이야기하고 이후 임금피크제에 어떻게 대응할 건지 고민할 예정”이라며 “현재 소송이 진행되는 건이 있어 이번 판결로 어떤 영향이 있을지도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책은행에서는 임금피크제에 따른 임금 삭감분에 대한 반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산업은행 시니어노조는 2019년 임금피크제 적용이 무효라며 깎인 임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한 뒤 항소심을 진행 중이다. 기업은행 현직자 및 퇴직자 470명도 임금피크제로 삭감된 임금을 반환하라는 청구 소송을 지난해 1월 제기했다. 또 다른 국책은행 노조 관계자는 “이번 임금피크제 소송 판결과 소송 중인 사건이 부합하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르겠다”며 “개별 판단을 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책은행 노조는 진행 중인 소송을 지원하는 한편, 임금피크제 시행 시기를 늦추거나 완전 폐지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결과에 따라 임금피크제 관련 소송도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국책은행은 매년 임금피크제에 진입하는 인력이 크게 늘고 있다. 윤두현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전체 직원 대비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자 비율은 ▲산업은행 8.9% ▲기업은행 7.1% ▲수출입은행 3.3%에 달한다. 금융당국은 내년 국책은행 임금피크제 진입 인력이 약 1500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임금피크제의 개선 방향은 기획재정부와 금융당국을 중심으로 논의 중인 국책은행 희망퇴직 제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책은행은 총 인력 정원이 정해진 가운데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이 실무에서 제외되면서 일반 직원들의 업무 부담이 늘어나고 인사 적체가 발생하자 희망퇴직을 활성화해달라고 요청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제시한 희망퇴직 안은 큰 이점이 없어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이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시중은행에서는 작년 2500여 명의 명예퇴직자가 나온 반면 국책은행에서는 단 한 건의 명예퇴직 신청도 없었다.
만약 임금피크제가 노동자 중심으로 개선된다면, 정부는 국책은행의 인사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더 나은 조건의 희망퇴직 제도에 대해 고민해야 할 상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책은행 노조 관계자는 “아직 임금피크제 관련 논의를 정리 중으로, 정리 후 기재부와 명예퇴직 제도와 관련해 이야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