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저신용자를 상대로 하는 중금리 대출 시장 몸집이 커지면서 저축은행이나 카드사를 포함한 제2금융권이 신용평가모형(CSS)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저신용자의 금융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CSS 고도화는 전 세계적인 추세다. 이전에는 신용점수를 기반으로 천편일률적으로 대출 심사를 했다면 이제는 여러 대안 정보를 기반으로 상환 능력을 검증해 이윤이 높은 중금리 대출 서비스 이용자를 한 명이라도 더 늘리겠다는 전략이다.
일본계 J트러스트그룹 산하 JT저축은행은 지난달 29일 머신러닝 기술을 활용한 새로운 개인 신용평가모형을 대출 상품 심사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머신러닝 기술은 많은 정보를 기계 학습을 통해 분석하는 기술이다.
머신러닝을 CSS에 접목하면 신용평가사에서 제공하는 신용점수뿐 아니라 통신비 납부 내역이나 직장·사업장 관련 정보 같은 세밀한 안건을 바탕으로 상환 능력을 평가할 수 있다. JT저축은행은 이 시스템을 개발하기 위해 지난해 9월부터 CSS 고도화 전담 TF팀을 구성했다.
저축은행 관계자들은 CSS 고도화가 앞으로 마이데이터(My data·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과 연계해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저축은행 중 유일하게 마이데이터 서비스를 운영 중인 웰컴저축은행은 19일부터 웰컴마이데이터 맞춤대출 서비스를 시작했다.
한국금융소비자연맹 관계자는 “CSS 수준이 높아지면 신용점수가 600점을 넘지 못해 대출 승인을 받지 못했던 금융 소비자들도 다른 근거를 바탕으로 적절한 대출 한도를 부여받을 수 있다”며 “자체적으로 CSS를 고도화할 수 있는 대형 저축은행들과 자본이 부족해 표준화된 CSS만을 사용해야 하는 중소형 저축은행들 사이 여신에서 수익성을 확보하는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한카드도 19일 국내 1호 전문 개인신용평가사 크레파스솔루션과 손잡고 사회 초년생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 특화한 대안 신용평가 사업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신한카드는 카드 승인 관련 빅데이터 뿐 아니라 스마트폰 충전 주기나 어플리케이션(앱)·인터넷 사용 기간 같은 모바일 데이터, 디지털 행동 데이터 같은 세세한 정보를 반영한 신용평가 모델을 구축했다.
KB국민카드, BC카드는 개인사업자를 대상으로 한 신용평가(CB·Credit Bureau)를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개인사업자 CB는 자영업자에 특화한 대안 신용평가 서비스다. 자영업자들은 매달 일정한 급여를 받는 직장인에 비해 소득이 오르락내리락한다는 이유로 그동안 시중은행에서 매출에 비해 적은 대출 한도를 감수했다.
특히 2금융권 대다수는 담보대출이 아니면 자영업자에겐 ‘평가가 어렵다’는 이유로 신용대출을 내주지 않았다. 이들 카드사는 가맹점 정보와 매출 정보, 상권 분석 정보 등을 활용해 기존 금융기관보다 입체적인 신용평가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기존 금융기관에서 품지 못했던 자영업자 대출 수요를 흡수했다.
신용평가모형 고도화는 자본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수익성과 직결되는 대출 수요를 끌어올릴 수 있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다. 올 들어 저축은행은 기준 금리 상승으로 대출 금리가 뛰면서 여신 규모 유지에 골치를 앓고 있다. 카드사 역시 우대금리까지 얹어 주면서 카드론 수요를 끌어모으고 있다.
올해 1월부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계산에 카드론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고신용자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여느 때보다 높아졌다. 이 가운데 상환 능력이 충분한 중‧저신용자를 선별해 대출을 추가로 공급하면 금리 인하 같은 대출 완화 정책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제2금융권에 훨씬 큰 이득이 될 수 있다.
금융개발원 관계자는 “지난 2년 동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금융업계에도 빠르게 디지털 혁신이 일어나면서 인터넷 쇼핑 결제 횟수나 배달음식 평균 결제 금액처럼 이전에 구하기 어려웠던 비(非) 금융 데이터가 빠르게 쌓였다”며 “이전에 대출 심사에 사용하지 못했던 데이터를 정교하게 분석하는 능력을 갖춰야 신용평가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것”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