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소재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모(28)씨는 최근 보유하고 있던 국내 주식을 정리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진 데다가 우리나라와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면서 국내 증시가 ‘박스권’에 머무를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매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을 들여다보던 이씨는 요즘은 은행연합회 소비자포털 사이트 등을 방문하고 있다. 금리 상승기 속 각 은행이 잇달아 내놓는 예·적금 특판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빚투(빚내서 투자)’ 투자 경향을 보였던 소비자들이 금리가 오르고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 속에서 예·적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서울 시내의 시중은행 ATM기기의 모습. /뉴스1

18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은행과 KB국민은행, 하나은행은 이날부터 정기예금·적립식예금 금리를 최대 0.4%포인트(p) 인상했다. 지난 1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 금리를 기존 연 1.25%에서 1.50%로 0.25%p 올리자, 수신상품 금리 조정에 나선 것이다. 그동안 기준금리 인상분이 예·적금에 반영되기까지 길게는 2주일이 걸렸던 점을 보면 이례적이란 평이 나온다.

이들 은행 외 나머지 은행들도 조만간 금리 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NH농협은행과 BNK부산은행도 이날 정기예금과 적금 금리를 오는 19일부터 상품별로 최대 0.40%p 올리기로 했다. 은행권이 수신금리를 인상하면 정기 예금 평균 금리는 3년 만에 연 2%대에 이를 전망이다. 은행의 정기예금 가중평균금리(신규취급액 기준)는 지난 2월 1.92%로, 전년 5월(0.92%)과 비교해 1%포인트(p) 오른 상태다.

이에 따라 금융소비자들은 안전 자산인 예·적금에 몰리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2월 평균 광의 통화량(M2 기준)은 3662조6000억원으로 1월보다 21조8000억원(0.6%) 늘어났다. 이는 전년 같은 달보다는 11.8% 증가한 수치다. 광의통화는 시중 통화량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로,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성 자금을 의미한다.

금융상품별로 살펴보면 안전자산으로 볼 수 있는 정기 예·적금 증가세가 두드러진다. 올 2월 한 달 새 2년 미만 정기 예·적금은 19조9000억원 늘었다. 이는 2002년 비교 가능한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래 지난 1월(22조7000억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반면 주로 부동산, 주식 거래에 자주 쓰이는 요구불 및 수시입출식 예금 등이 포함된 협의통화(M1, 평잔 기준) 잔액은 올해 2월 1353조3000억원으로, 전월보다 9000억원(0.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일러스트=정다운

다만 금리 인상으로 불어난 대출 이자 부담에 비하면 아직은 예·적금 이자 혜택이 저조하다는 지적도 있다. 금리가 연 4~5%인 적금 상품은 가입 조건과 월 저축 한도가 제한돼 실질적인 수신 금리 인상의 혜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시중은행이 취급하는 상품 중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적금 상품 최고 금리는 3%대로 예치금 한도가 설정돼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금리가 워낙 낮아 적금 대신 적립식 주식 투자 등이 인기를 끌었었다”면서 “기준금리 추가 인상으로 체감 효과가 떨어졌긴 하지만, 이제는 자금이 위험자산에서 은행으로 이동하는 ‘역(逆) 머니무브’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