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빡빡한 대출 규제 탓에 은행별 대출 한도에 걸려 돈을 빌리지 못했던 직장인 이모(37)씨는 8000만원을 신용대출로 빌리려고 발품을 팔다 깜짝 놀랐다.
평소 월급통장까지 만들어 가며 써왔던 대형 시중은행의 회사 앞 지점은 대부분 5000만원까지밖에 대출이 안 되는 데다, 금리도 연 5%대 중후반으로 작년까지 적용됐던 대출 조건에 비하면 너무 높았다. 월급 자동 이체와 연계 카드 사용, 적금 가입까지 해야 받을 수 있는 우대금리를 모두 합쳐도 금리는 5%가 넘었다.
반면 이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집 앞 신협에서는 “대출 한도 7600만원에 4%대 초반 금리로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이씨는 “대형은행 금리가 어떻게 상호금융보다 높을 수 있는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며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불필요한 어플리케이션(앱)을 깔고, 여러 상품 가입에 추천인까지 적어 가면서 은행에 충성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금융당국의 강도 높은 대출 규제로 1금융권에 속하는 시중은행 대출금리가 2금융권으로 분류되는 상호금융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다. 자연히 새마을금고·신용협동조합 대출 금리가 시중은행보다 낮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 역시 갈수록 뚜렷해지는 추세다.

9일 새마을금고중앙회에 따르면 전국 새마을금고가 지난해 11월 중 신규 취급한 전체 대출 평균금리는 약 3.91%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 3.90%보다 0.01%포인트(P)가 오르긴 했지만, 2020년 말 기준으로 4%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오히려 떨어졌다. 아직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잡으면 약 3.98% 정도가 나올 것이라고 새마을금고는 추산했다.

신협 역시 지난해 11월 기준 가계대출 금리는 평균 5.05%, 주택담보대출 평균 금리는 3.53%로 집계됐다. 2020년 가계대출 금리가 6.05%, 주담대 금리는 3.42%였던 것을 감안하면 신용금리는 1%P 가까이 떨어졌고, 주담대는 0.11%P 올랐다.

3일 서울의 한 은행에 붙은 대출 안내 현수막. /연합뉴스

반면 은행연합회 공시를 조회해보면 같은 기간 은행권 신용대출 평균금리는 5.12%로 올랐다. 비교적 높은 금리가 적용되는 서민금융 상품을 빼도 평균 4.90%를 기록했다. 시중은행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2020년 말 기준 3.82%에서 지난해 9월 말 4.34%, 11월 5.12%로 빠르게 오르는 중이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을 봐도 지역 농·축협을 전부 포함한 국내 상호금융권 신용대출 평균 금리는 지난해 11월 기준 4.17%였다. 반면 같은 달 은행권 신용대출 금리는 평균 5.16%로 1%P 가까이 높았다.

보통 시중은행은 신용등급이나 재정 안전성에서 규모가 협소한 상호금융보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는다. 채권을 포함한 조달 금리가 낮으니 대출 원가도 저렴하다. 이 때문에 이자도 당연히 2금융권에 속하는 상호금융보다 낮다는 것이 상식에 가깝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이 ‘가계 대출 증가율을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가산 금리를 급격히 올리고, 우대금리를 줄이며 대출 금리를 높이기 시작하자 상호금융권은 이때를 틈 타 은행에서 돈을 못 빌린 고(高)신용자들을 은행보다 낮은 금리로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금융개발원 관계자는 “평소에도 은행들은 시장금리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나서 우대금리를 빼는 방식으로 대출금리를 산정한다”며 “가계대출 증가율을 몇 퍼센트에 맞추라고 금융당국이 압박하면 시중은행으로선 가산금리와 우대금리를 조정해 대출 수요를 디마케팅(demarketing)하는 방법 말고 딱히 취할 수단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금리 역전이 뚜렷해지기 시작한 지난해 11월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같은 5대 은행 대출 금리에 추가로 붙는 가산 금리를 종합하면 총 3.1%를 기록했다. 이는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최고 기록이다.

새마을금고나 수협 같은 상호금융은 소관부처가 금융당국이 아니라 행정안전부와 해양수산부인데다, 상호금융 특성상 일단 명목상 조합원으로 가입해야만 대출이 나오는 형태라 상대적으로 금융당국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편이다. 평소 고신용자보다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소액 대출을 주로 해왔기 때문에 대출 총량 면에서도 시중은행보다 다소 여유가 있다는 점도 요즘 같은 ‘대출 보릿고개’ 시국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금융권 전문가들의 평가다.

서울 시내 한 새마을금고에 부착된 대출 안내문. /연합뉴스

지난해 금융당국이 대출 규제 고삐를 쥐기 시작한 직후부터 상호금융권 대출 수요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상호금융권 가계 대출 규모는 341조 원으로 연 초보다 9.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은행권 가계 대출 규모는 856조원에서 907조원으로 5.9% 증가하는 데 그친 데 비해 상대적으로 큰 폭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전에는 시중은행과 상호금융 사이 자금 조달 비용 차이가 크게 났지만,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이 격차가 줄어들어 상호금융권도 대출 원가를 낮출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상호금융이 사회적으로 맡은 역할이 있기 때문에 시중은행과 동일한 규제를 적용할 수는 없지만,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비율을 낮추거나 대출 총량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식으로 꾸준히 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급증하는 가계 부채를 잡기 위해 지난해 10월 26일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에 따르면 올해 시중은행에서 총 2억원 이상 대출한 금융 소비자는 DSR 40%가 적용된다. DSR은 소득 대비 갚아야 하는 원리금의 비율로, 매년 갚아야 하는 원리금이 소득의 40%를 넘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반면 올해 상호금융권 DSR은 110%로 은행보다 3배 가까이 높다. 지난해는 160%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