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한국은행이 추진 중인 CBDC(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모의실험이 2단계에 돌입하는 가운데, 은행들도 블록체인 기술 활용에 페달을 밟고 있다.
CBDC는 블록체인(분산저장) 기술을 기반으로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전자적 형태의 화폐를 말한다. 한국은행이 CBDC 도입 검토를 위해 추진 중인 모의실험 연구사업은 작년 1단계 테스트를 거쳐 올해 1월부터 오는 6월까지 확장기능을 검증하는 2단계 실험을 진행한다.
4일 은행권에 따르면 한국은행의 CBDC 모의실험이 시작된 지 약 1년여 만에 은행권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크고 작은 성과들이 수면 위로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선 KB국민은행은 최근 CBDC, 가상자산, NFT(대체 불가능 토큰) 등 디지털 자산 보관을 지원하는 ‘멀티에셋 디지털 지갑’ 시험 개발을 완료했다. 이는 한은의 CBDC 모의실험에 사용된 블록체인 플랫폼인 클래이튼을 기반으로 개발한 것이다. 국민은행은 이번 시험 개발을 통해 확보한 ‘블록체인 월렛’ 기술을 바탕으로 올해 시작되는 한국은행 CBDC 모의실험 연계 테스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LG CNS와 함께 블록체인 플랫폼 도입과 CBDC 파일럿 시스템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하나은행 역시 포스텍크립토블록체인연구센터와 함께 CBDC 기술 검증을 추진 중이다. 앞서 하나은행은 블록체인 기반 자금 중개 서비스와 고속도로 통행료 미납 납부·환불 신청 서비스를 잇따라 출시하기도 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해 LG CNS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 플랫폼을 시범 구축했다. 블록체인 기술과 네트워크를 활용한 스테이블 코인 기반 해외송금 기술도 개발했다. 전문직 대출 자격 인증 서비스와 퇴직 연금 플랫폼 등에도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기도 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중앙은행의 CBDC 발행 후 이어지는 시중은행의 공급, 개인의 교환, 이체와 결제 등 디지털화폐가 실물화폐처럼 원활하게 융통될 수 있는지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검증하고 있다”면서 “이와 함께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사업을 여러 방향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모두 제도권 내 허가형 프라이빗 블록체인 플랫폼 도입이나 CBDC 발행·유통·결제·환수 등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해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을 구축하고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다.
시중 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권에서는 2016년부터 조직 차원에서 서서히 블록체인을 활용한 금융 서비스 모색 움직임이 생겼으나 블록체인 기반 플랫폼 개발이나 서비스에 대한 본격적인 투자는 CBDC 도입 가능성이 화두로 떠오른 지난해부터”라고 설명했다.
실제 지난해 은행들은 블록체인 기술 기업과 협업을 강화하거나 아예 블록체인 기술 개발자를 별도로 채용하는 등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은행들이 한국은행 CBDC 발행에 대비하며 블록체인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과 손잡고 기술 검증과 서비스 개발에 뛰어든 데는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생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위기 의식도 깔렸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 서비스의 파괴적 혁신을 비전으로 내걸며 계열사(자회사)를 통해 시장에 진입한 카카오, 네이버 등이 향후 금융서비스의 블록체인 기술 활용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는 것에 대해 기존 은행들의 두려움도 내재돼 있다”고 의견을 냈다.
특히 은행들은 CBDC가 저축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기존 자금이 CBDC로 전환할 경우 은행들의 수익원인 대출 여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이자가 지급되지 않는 현금형 CBDC가 도입될 경우 일반 요구불 예금을 CBDC로 대체할 유인은 크지 않으나, 이자지급형 CBDC는 은행의 신용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만약 이자지급형 CBDC 체제에서 CBDC금리가 예금금리를 상회할 경우, 기존의 예금이 CBDC 보유로 대체되면서 은행들의 예금수신액이 감소하고 대출여력이 축소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에 따라 이자지급형 CBDC 도입으로 기존 은행들의 금융중개 기능이 약화할 우려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함께 KB국민은행, 신한은행,NH농협, 우리은행은 디지털자산 수탁 사업(커스터디)에도 잇따라 뛰어들며 주도권 경쟁을 시작했다. 커스터디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대신 보관하고 관리하는 서비스로, 각 은행은 블록체인 기술 기업과 별도의 합작 회사를 설립하거나, 업무협약을 맺고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미국과 일본, 유럽 국가 등 해외 주요 은행들의 디지털 신사업 전략을 국내 은행들도 따라가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국은행이 추진하는 CBDC 모의실험은 2단계로 진행 중이다. 올해 1월부터 6월까지 진행하는 2단계 실험은 통신 불능 등 장애 환경에서의 결제 기능 등 오프라인 결제와 개인정보보호 강화기술 등 확장 기능을 검증한다. 작년 8월~ 12월까지 실시한 1단계 테스트에서는 가상환경에 블록체인 기반의 CBDC 모의실험 환경을 구축하고 발행, 유통, 환수 등 CBDC의 기본 기능의 기술적 구현 가능성에 대한 검증이 이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