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이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맞춰 관련 산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노인 요양산업이 보험사 입장에서는 ‘블루오션’으로 여겨지고 있음에도 높은 초기 투자 비용과 경영리스크, 관련 규제 등이 발목을 잡는 모습이다.

서울시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KB골든라이프케어 서초빌리지’의 모습. /KB손해보험 제공

2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보험사들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다. 현행법상 10인 이상의 요양시설을 설립하기 위해선 시설 소유자와 경영자가 동일해야 한다. 수요가 많은 대도시나 수도권에 토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건축할 자금이 있어야 요양시설 운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그나마 자금력이 되는 대형 보험사의 경우, 노인 요양서비스를 조금씩 확대하고 있다. KB손해보험이 대표적이다. KB손보는 자회사 KB골든라이프케어를 지난 2016년에 설립했다. 이후 2017년엔 서울 성동구에 ‘강동케어센터’와 2019년에는 서울 송파구에 ‘위례케어센터’와 ‘위례빌리지’를 열었다. 올해 5월에는 서울 서초구에 ‘서초빌리지’도 마련했다. KB손보는 내년 하반기 정도에 요양 관련 시설을 은평구에 추가로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반면 중소 보험사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한 중소형사 관계자는 “참여하고 싶어도 초기 투자 비용, 경영리스크 등으로 인해 섣불리 움직이지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대부분의 보험 상품이 포화상태에 이른 만큼 노인 요양산업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관련 규제가 보험사들의 진출을 막고 있는 부분이라고 동의했다. 조용운 보험연구원 연구원은 “땅값이 비싼 수도권 지역에 10인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부지를 마련하기엔 금전적인 부담이 크다”며 “규제를 완화하면 공급과 참여율이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손민균

관련 수요는 계속 많아지고 있다. 지난 10월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원이 발표한 ‘노인장기요양서비스 실태와 보험산업의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요양보험 수급자 증가율은 계속 높아지고 있다.

2014년 8.5%를 기록한 수급 증가율은 2020년엔 10.2%로 1.7%포인트(p) 증가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 증가율은 4.4%에서 5.8%를 기록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요양보험 수급자 수는 80만7000명으로 전체 노인 인구 대비 9.5%를 기록했다. 10명 중 1명이 요양보험에 가입한 셈이다.

강 선임연구원은 앞으로도 증가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요양보험서비스에 대한 수요 역시 증가할 것으로 판단했다. 그는 “고령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장수화는 질병 및 장수 리스크를 증가시키고, 이로 인해 고령층의 장기요양서비스 수요는 급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높아지는 증가율에 비해 관련 서비스의 질이 낮다는 지적은 여전하다. 보험연구원이 30대 이상 성인 209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요양서비스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21.9% 정도가 노인 요양서비스를 중단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공되는 서비스가 불만족스럽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현재 한국의 요양시설 중 60%는 ‘9인 이하’ 소규모 시설이다. 이들 중 보험사가 요양시설 등을 제공할 경우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 69%로 나타났다. 이 중 노인 요양 수급자의 경우 72.4%가 관련 시설을 이용하겠다고 답했다.

그래픽=손민균

이런 문제점을 바탕으로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 보험연구원, 보험업계 등과 함께 지난 7월 보험사 요양 서비스 사업 진출 활성화를 위한 간담회를 개최했다. 해당 자리에서는 폐교를 활용해 요양시설 공급을 확대하거나 기존 보험 상품과의 연계성을 높이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비자단체들도 정부의 적극적인 참여를 주문했다. 규제 장벽을 낮춰 노인 관련 사업에 뛰어드는 기업들이 많아질수록 소외당하는 노인의 수가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보험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요양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노인 중 34.7% 정도가 ‘아무 도움 없이 혼자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배홍 금융소비자연맹 국장은 “초기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 실질적으로 뛰어드는 보험사들이 그리 많지가 않다”며 “이런 부분을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노인들을 위한 요양보험 활성화에 나서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그는 “민간 자본뿐 아니라 정부 차원의 제도를 통해 소외되는 노인들을 보호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KB손보 관계자는 “점차 늘고 있는 수요에 맞춰 관련 서비스들을 준비 중이다”라고 전했다. 다른 보험 업계 관계자 역시 “요양산업은 대부분의 보험사가 눈 여겨보고 있다”며 “앞으로 수요가 계속 늘어날 분야이기에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