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이 지난 2020년 인수한 프로축구단 대전하나시티즌이 지난 12일 강원FC와의 K리그 승강전에서 패배하면서 1부 리그(K리그1) 승격에 실패했다. 하지만 하나은행 입장에서 마케팅 짭짤한 마케팅 효과를 거두었다는 게 금융계와 축구계의 중평이다. 무엇보다 내홍에 시달리면서 2부 리그(K리그2) 내 하위권을 전전하던 팀을 단기간 내에 강팀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올해부터 구단주 역할을 맡고 있는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의 역량을 보여준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프로축구 K리그2 대전하나시티즌은 12일 강원도 강릉시 강릉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PO) 2차전에서 2대 4로 패배하면서 1부 리그 승격에 실패했다. 전반 16분 대전이 선취득점에 성공했지만, 전반 26~30분 내리 세 골을 내주면서 역전패하게 됐다. 대전은 8일 1차 전에서 1대 0으로 승리하면서 1부 리그 승격 가능성이 높았다. 올해까지 8차례 치러진 승강 PO에서 1차전 승리팀이 승격에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8일 대전 한밭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1년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강원FC와 대전하나시티즌의 경기에서 승리한 대전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보통 이렇게 역전패를 당하면 해당 프로팀은 팬들의 매서운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전 팬들 사이에서는 ‘승격 문턱까지 온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만한 도전이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몇몇 팬들은 경기 결과에 대해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는 반응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남기기도 했다. 2015년 이후 오랫동안 성적 부진과 내홍을 겪어오던 팀이 부활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지역 유력지 대전일보는 “기업구단으로 새출발한 지 2년 만에 승강 PO에 진출했다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대전하나시티즌은 오랫동안 시민구단으로 운영되다가 2020년 하나은행에 인수됐다. 전신인 대전시티즌은 1996년 창단됐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창단 당시 주요주주이던 지역 기업 동아건설, 동양백화점, 충청은행이 파산하면서 구단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가 2006년 대주주 계룡건설이 대전광역시에 구단을 매각하면서 완전한 시민구단으로 전환됐다. 2014년 2부 리그(당시 K리그챌린지)에서 우승하고, 2015년 1부 리그(K리그클래식) 최하위를 기록해 다시 떨어진 뒤 오랫동안 성적 부진과 내홍을 겪어왔다. 하나은행은 이 팀을 2020년 인수해 명칭을 대전하나시티즌으로 바꿨다.

하나은행은 인수 이후 투자를 늘리고, 능력과 인망이 검증된 인물들로 운영진을 꾸렸다. 구단을 운영하는 하나금융축구단 이사장에 허정무 전 한국프로축구연맹 부총재를 선임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 과감하게 여러 선수들을 스카웃해 경기력을 보강했다. 대전은 2020년 K리그2 4위를 기록했다.

올해 초 구단주를 맡게된 함영주 부회장은 축구단 운영에 대한 남다른 의지를 내비쳤다. 함 부회장은 충남 부여 출신으로 하나은행에 인수된 옛 충청은행의 대표를 맡기도 했다. 그는 K리그 구단주로는 보기 드물게 종종 경기 직관에 나섰다. 그의 취임 이후 과감한 투자가 더해져 팀이 진일보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이번 시즌 승격에 성공하면 모그룹인 하나금융이 1부리그인 전북현대와 울산현대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투자에 나설 것이라는 소문도 공공연하게 돌았다. 그 규모가 4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설이 돌면서 팬들도 기대감을 모았다.

대전하나시티즌 창단식에 참여한 함영주 하나금융 부회장의 모습.

대전은 올해 K리그2 팀 가운데 평균 관중(1600명)이 가장 많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관중수 1위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관객몰이에 성공한 셈이다. 대전에서 열린 승강전 1차전에서는 6100명의 관객이 몰렸다. 성적도 2등으로 뛰어올라, 승강전을 갖게 됐다. 승격 1차전에는 함영주 부회장과 허태정 대전시장이 경기를 관람했다.

일각에선 현재 하나금융그룹이 ‘포스트 김정태’를 찾고 있는 가운데, 유력한 후계 주자로 꼽히는 함 부회장이 또 다른 능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나금융 평판 개선에 한몫한 것은 물론, 스포츠 구단 운영은 최근 화두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0년간 하나금융을 이끌어 온 김 회장의 임기는 내년 3월 자로 끝나는데, 현재 후임자로 함 부회장 이외에 지성규 부회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등이 거론된다.

한편 하나금융은 금융권에서도 스포츠 지원에 가장 적극적인 그룹으로 꼽힌다. 함 부회장 외에도 김 회장은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회장이기도 하며, 박성호 하나은행장은 여자농구단 부천 하나원큐의 구단주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