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을 맞아 은행들이 본격적인 감원 작업에 나선다. 과거엔 연말 ‘구조조정 칼바람’에 은행권 안팎이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예년보다 좋은 희망퇴직 조건에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인 고연차 행원뿐만 아니라, 40대 초반의 행원들도 조기 퇴직 바람에 올라타고 있다.

올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은행권에서는 작년에 이어 대규모 명예퇴직을 이어가고 있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주요 은행들은 오는 12월 중 명예퇴직 신청자를 받을 예정이다. 각 은행 관계자는 “명예퇴직 규모나 구체적인 조건 등은 노사가 함께 논의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노사 간 합의를 거쳐 12월 중 퇴직 신청 관련 공고가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달 서울시 한 은행의 대출 창구 모습. /연합뉴스

대다수 은행은 만 56세부터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는데, 임금피크제 적용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 올해는 1965~1966년생이 명예퇴직 신청 대상자가 된다. 이와 함께 만 15년 이상 근무하고 만 40세 이상인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준정년 특별퇴직’ 제도가 운영된다. 특별퇴직, 희망퇴직 등으로도 불리는 은행권의 명예퇴직 신청은 12월 임원인사 시기와 맞물려 진행된다. 희망퇴직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내년 1월 직원 인사가 함께 이뤄진다.

요즘 ‘정년 퇴직’을 희망하는 행원은 드물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내달 명예퇴직 신청을 받을 예정인 한 은행 관계자는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 직원의 99%는 특별퇴직을 자발적으로 택하는 분위기”라며 “은퇴까지 받는 급여보다 명예퇴직을 선택해 특별퇴직금을 받는 게 더 이득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여긴엔 은행들이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명예퇴직 조건을 확대하는 추세가 영향을 미쳤다.

SC제일은행의 경우 지난달 은행권 중에서 가장 먼저 특별퇴직(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전년보다 신청 대상자와 함께 조건을 확대했다. 직위나 연령, 근속 기간에 따라 최대 36~60개월분의 월급이 특별퇴직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최고 한도는 6억원으로, 연령에 따라 창업지원금 최대 6000만원과 자녀 학자금 최대 4000만원도 지급한다. 이에 약 500명의 희망자가 몰려 퇴직 처리됐다. 이는 962명이 특별퇴직한 2015년 이후 6년 만에 최대치다.

소매금융 사업을 철수하는 한국씨티은행도 사측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한국씨티은행 측에 따르면 오는 12월과 내년 2월, 4월에 나눠 순차적으로 명예퇴직 대상자들의 퇴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전체 직원의 66%에 달하는 규모인 직원 약 2300여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씨티은행은 소매금융 공식 철수를 발표한 데 이어 지난달 말부터 이달 10일까지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그러면서 정년까지 남은 기간이 5년 이하면 잔여 개월 수만큼 최장 7년까지 월급을 보장하고, 5년 초과일 경우 100% 특별퇴직금을 지급하는 조건을 제시했다. 지급액은 기준 연봉의 7배를 상한으로 해, 최대 7억원까지다. 정년까지 남은 개월 수에 기준월급(연봉을 12개월로 나눈 금액)을 곱한 값이 특별퇴직금이 되는 식이다.

업계에 따르면 파격적인 조건에 사업을 철수하는 소매금융 부문뿐 아니라 사업을 계속 유지하는 기업금융 부문 직원들까지도 대거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이에 사측은 기업금융 부문 희망퇴직 신청자의 경우, 일부만 선정할 예정이다.

농협은행은 지난 23일까지 만 4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았는데, 452명이 응했다. 농협은행은 만 56세 명예퇴직자에겐 28개월 치 임금과 전직 지원금 4000만원, 농산물 상품권 1000만원을 지급한다. 반면 10년 이상 근무한 만 40세 이상 직원에겐 20개월치 임금을 제공한다. 이번 명예퇴직 조건은 지난해 만 56세 직원에게 지급한 특별퇴직금과 같은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향후에도 주요 은행들이 오프라인 점포와 함께 인력을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지속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런 시각 하에 은행원들 사이에서도 사측이 우호적인 조건을 제시할 때, 자발적으로 떠나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이 커지는 것이다. 또 최근 금융업계뿐만 아니라 IT스타트업계에서도 은행권 인력 영입이 잇따르고 있는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다.

은행으로서도 인력을 감축하려면 임금과 지원금 등 비용 부담이 큰데, 가계대출 증가 등에 힘입어 과실(이익)이 커졌다는 점에서 조직을 슬림화할 수 있는 적기라고 보고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정년을 10년 이상 앞둔 직원들 사이에서도 일찍이 ‘인생 2막’을 준비하는 편이 낫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면서 “퇴직 후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거나 퇴직금 등 금융자산을 발판으로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직원들도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