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인원이 10만명에 육박한다. 해가 갈수록 보험사기가 급증하는 가운데 수법 또한 날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보험사기라 하면 흔히 '나이롱 환자'를 떠올렸지만, 최근의 보험사기는 보험설계사 등 직무관련자가 가담해 조직적이고 지능적으로 변화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손해보험 관련 사기가 전체 보험사기 중 90% 이상을 차지한다. 보험사기가 늘어날수록 보험사의 부담은 커지고 이는 결국 보험료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제 제보와 현장 중심의 조사만으로 한계에 부딪힌 국내 주요 손해보험사들은 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T)을 활용해 보험 사기를 잡아내고 있다. [편집자주]
A씨와 B씨가 골목길에서 운전 중 서로 충돌해 접촉 사고가 났다. 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고의사고로 보험금을 타내려 사전 모의한 것이 드러났다. 현대해상의 '사회연결망분석(SNA) 시스템'이 이들이 과거 교통사고 당시 같은 차에 타고 있던 직장동료 사이였던 걸 적발했다.
서울 강동구 소재 C한의원이 실제로 내원하지 않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을 한 뒤 수백만원의 보험금을 현대해상에 청구했다. 그러나 덜미가 잡혔다. 현대해상의 빅데이터 기반 '한방의료기관 불법행위 탐지시스템'이 C한의원을 불법 허위 의심기관으로 선별해 적발한 것이다.
현대해상이 최근 적발한 실제 보험사기 사건들이다. 총 32명으로 구성된 현대해상 보험조사부는 전직 형사와 간호사, 개발자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협업해 일하고 있다. 보험상품 개발, 계약인수, 보험금 지급, 사기조사 등 보험 업무 전체에 걸쳐 보험범죄를 방지하는 것이 목표다.
가장 핵심 업무인 보험사기 조사는 그동안 주로 오프라인 현장 중심으로 이뤄졌다. 보험사기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목격자나 참고인의 진술 등 혐의를 입증하기 위한 대면 업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대면 업무가 제한되면서 보험사기 조사 업무도 위축된 상황이다.
점점 지능화, 조직화해 가는 보험사기에 대응하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했다. 이에 현대해상은 '자동차 고의사고 탐지시스템'과 '한방의료기관 불법행위 탐지시스템'을 자체 개발해 보험사기를 잡고 있다.
이상훈 현대해상 보험조사부장은 "기존 불법행위 조사방법은 대부분 내부자의 제보를 통해서 이뤄졌다"며 "따라서 제보의 신빙성이 떨어지거나 혹은 제보 자체가 감소 시 보험사기 조사 자체를 진행할 수 없어 수동적 조사의 한계가 분명했다"고 설명했다.
◇ AI는 네가 지난 과거에 탑승한 차까지 알고 있다
자동차 고의사고 탐지시스템은 사전에 공모한 보험사기 일당이 자동차를 이용해 고의로 자동차 사고를 유발 후 보험금을 편취하는 보험사기를 탐지하기 위해 개발했다.
자동차 고의사고는 보험사기 중 가장 오래되고 보편적인 사기 수법이다. 손해보험 사기 유형 중 70%를 차지하는 만큼 손보사 입장에서 1순위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현대해상이 개발한 자동차 고의사고 탐지시스템은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했다. 머신러닝이란 데이터를 통해 시스템을 학습할 수 있는 AI의 한 형태다. 주어진 데이터를 이용해 다양한 사고 특성을 파악하고 고의사고를 예측한다.
현대해상은 자동차 사고의 보험사기 위험도를 판단하게 하기 위해 기존의 자동차 사고 데이터를 AI에 학습시켰다. 이 데이터에는 사고 유형부터 운전자 정보 등이 포함됐다. 대다수 고의사고가 사전 공모를 통해 발생하는 만큼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던 사람들 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현대해상은 이를 통해 SNA(사회연결망분석) 기능을 구현했다. SNA는 과거에 발생했던 고의사고 정보를 수많은 선으로 연결, 이를 최근 일어난 사고들과 실시간으로 대조한다. 현재와 과거 사고 사이에 연관된 특이점과 유사점이 있다면 화면에 붉은 선으로 표시되고 이를 보험조사부에 통보한다.
이 부장은 "겉으로 보기에는 우연히 발생한 사고지만, 이를 그림의 선으로 과거 사고와 다 연결해보면 모순점이 드러나는 것들이 많다"며 "이 정황을 기반으로 조사에 들어가면 보험사기를 공모한 피보험자 대다수가 고의사고를 인정한다"라고 설명했다.
◇ 올해 상반기 16개 한방의료기관 불법행위 적발
최근 자동차보험 내 한방 치료비의 급증과 함께 한의원, 한방병원 등 한방의료기관의 부당 및 허위청구 등 불법 진료 행위가 손보업계의 새로운 골칫덩이다.
한방의료기관의 불법행위는 과거의 사무장병원이나 나일롱 환자와는 다르게 첩약, 추나, 약침 등 한방 진료 고유의 진료 항목별로 데이터를 분석하지 않으면 문제점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게 현대해상 측 설명이다.
특히 교통사고 환자 대상 첩약 보험금 허위청구 보험사기는 자동차 진료수가 기준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본인 부담금이 전혀 없는 교통사고 환자의 경우 의료기관은 고액의 첩약을 무분별하게 처방하는 것이다. 환자 입장에선 실제 자기가 몰래 첩약을 받은 사실을 알 수 없다.
현대해상은 이러한 불법행위 탐지시스템 구축을 위해 보험금이 지급된 한방의료기관 데이터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공공데이터를 결합했다.
이를 통해 한방의료기관 첩약 청구 패턴을 분석, 비정상적으로 첩약을 청구하는 한방의료기관을 자동 선별한다. 의료 기관별로 보험사기 위험 지수를 산출해 불법행위로 의심되는 곳을 자동으로 탐지한다. 그리고 결과값을 시각화 분석리포트로 제공, 한방의료기관이 이용하는 보험사기 유형을 적용해 조사 방향을 설정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현대해상은 이 탐지시스템을 지난해 개발 후 사용자의 편의성을 개선해 올해부터 실제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조사해 적발한 한방기관 모두 혐의를 인정했다.
이 부장은 "불법행위 탐지시스템으로 올해 상반기에만 16개 한방의료기관에서 총 2억1000만원을 보험사기로 적발해 편취 금액 전체를 반환 조치 완료했다"며 "이는 역대 최대 실적이며 보험업계에서도 단일 보험사 기준으로 최고 성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