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이 소매금융 부문의 한국 철수를 공식화한 지 6개월 만에 발표한 ‘출구 전략’은 결국 청산이었다. 2500명에 이르는 소매금융 관련 직원들의 대규모 인력 구조조정이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 씨티그룹이 2004년 한국씨티은행을 출범한 지 17년 만이다.
25일 은행권에 따르면, 씨티은행은 지난 22일 오후 열린 이사회를 통해 소매금융 사업 부문을 단계적 폐지(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소매금융 철수의 세 가지 시나리오 ▲통매각 ▲부분매각 ▲청산 중 결국 최악의 선택지로 결론난 셈이다.
◇ 발목 잡은 ‘고용 승계’… “각 사업 부문도 매력 떨어져”
씨티은행이 국내 소매금융 철수를 처음 공식화했던 지난 4월까지만 해도 ‘통매각’을 최우선으로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인수의향서(LOI)를 받기 시작하면서 계획이 꼬였다. 이에 은행 측은 6~7월 부분매각으로 입장을 선회한 뒤 자산관리(WM), 카드, 여·수신 사업 부문을 각각 매각하는 방식을 검토해 왔다.
국내 금융사 4곳 정도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고 실사에 참여했다. 여·수신 사업 부문은 일찍이 선호도가 낮았던 분위기로 알려졌다. WM과 카드 부문에서 막판까지 협상이 이어졌으나, 결국 후보들이 인수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발목을 잡은 것은 직원들의 ‘고용 승계’였다.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은 이날 “고용 승계를 전제로 하는 소매금융 사업 부문의 전체 매각을 우선순위에 두고 다양한 방안과 모든 제안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해왔으나, 여러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해 단계적 폐지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금융사들이 고용 승계에 난색을 보이는 큰 이유는 고비용이다. 우선 한국씨티은행의 1인 평균 연봉은 1억1200만원에 이르는데,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평균보다도 3000만원가량 높은 수준이다. 근속연수도 18.2년으로 높은데, 이는 향후 퇴직금 산정에 부담으로 작용하는 요소다. 씨티은행 노조에 따르면, 소매금융과 관련한 본점·영업점 등 총직원 수는 2500명에 이른다.
각 사업 부문을 떼어놓고 봐도 큰 매력이 없다는 것이 금융권 관계자들의 평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1980~1990년대 처음 씨티은행이 들어올 당시만 해도, WM 분야에서 선진 금융기법을 가진 금융사라는 강점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지금은 국내 금융사도 증권사 등을 거느리면서 고액자산가를 상대로도 못지않은 수익률을 낼 만큼 발전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카드든, WM이든 인수 시 씨티은행이 보유한 우량 고객을 그대로 넘겨받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굳이 인수가 아닌 특판 같은 마케팅을 통해서도 충분히 이들을 흡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2500명 대부분 퇴직 불가피… 수정 퇴직안 최근 노사 합의
씨티은행은 최대한 많은 이들을 잔존할 기업금융 부문에 재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대부분은 희망퇴직 수순을 밟게 됐다. 사측은 지난달 말 “정년까지 잔여 연봉의 90%를 보전해주고, 최대 7억원의 특별퇴직금을 지급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희망퇴직안을 노조 측에 전달해 협의에 돌입했다.
업계 최고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내부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나이 제한 등의 세부 제약 조건을 따지면 최고 수준의 퇴직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이들은 제한적이고, 상여금을 제외한 기본급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연봉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은 수준으로 책정된다는 등의 불만이 나왔다.
은행권 재취업이 어려운 분위기도 희망퇴직안을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요소로 꼽힌다. 씨티은행 사원 A씨는 “다른 시중은행들도 인력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인 상황에서 이직은 꿈도 못 꿀 분위기”라며 “경력도 어느 정도 있고 정년까지 시간이 많이 남은 40대들 사이에선 퇴직이 진정 나은 선택지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는 분위기가 짙다”고 말했다.
노사는 논의를 거듭한 끝에 최근 희망퇴직안에 최종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씨티은행 관계자에 따르면 사측이 최초 제시한 퇴직안 조건을 일부 수정해 노사가 최근 합의했으며, 관련 내용을 조만간 공식화할 것으로 알려졌다.
◇ 대규모 실업 우려에 금융당국 “폐지 과정 철저히 감독하겠다”
대규모 실업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금융당국의 역할론 또한 부상하고 있다.
금융노조 씨티은행 지부는 “금융당국이 소매금융의 단계적 폐지를 인가한다면 노동자 대규모 실업과 금융소비자 피해를 방관하고 금융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치며 금융당국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금융당국은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 단계적 폐지 과정을 철저히 감독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금융당국은 지난 22일 씨티은행에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른 조치 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사전통지했다. 당국이 은행에 이런 조치 명령을 내릴 경우 은행은 소비자 권익 보호 및 거래 질서 유지 등을 위한 계획을 마련해 이행하고, 단계적 폐지 절차 개시 전에 해당 계획을 금감원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이 계획에는 상품·서비스별 이용자 보호 방안, 영업 채널 운영 계획, 개인정보 유출 및 금융사고 방지 계획, 내부조직·인력·내부통제 관련 내용 등이 포함된다. 금융당국은 27일 관련 회의 열어 조치 명령 발동 여부와 구체적 내용을 확정해 의결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