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정다운

국내 시중은행이 올해 상반기 당기순이익 5조원을 기록하며 역대급 실적을 냈음에도 ‘위기 모드’다.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성장, 토스뱅크 출범 등 인터넷전문은행에 고객들을 조금씩 빼앗기고 있어서다.

시중은행은 디지털 금융 플랫폼과 비대면 상품 경쟁력 강화로 반격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여기서 플랫폼이란 기존 온·오프라인 환경에서 별개로 제공했던 서비스를 한데 묶어 하나의 앱에서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금융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디지털 플랫폼 사업을 위한 체질 개선 중이다. 사업 영역도 비금융으로 확장하면서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비대면 중심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전통적 사업 방식으로는 빅테크 서비스와 융합한 인터넷은행과 경쟁이 어렵다는 게 시중은행의 판단이다.

◇ 복잡한 앱 줄이고 비대면 상품 확대… “주택담보대출 시장부터 잡아라”

시중은행은 인터넷은행보다 편리한 플랫폼과 비대면 상품을 출시해 고객 이탈을 막는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터넷은행의 직관적 앱과 개발자들 역량 등은 시중은행이 넘기 어려운 장벽이었다.

그동안 시중은행은 서비스마다 별도의 앱을 개발했다. 너무 많은 앱이 오히려 불편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기능이 중복된 앱이 많고, 주기적인 업데이트가 어려워 잦은 오류도 발생했다.

KB국민은행은 현재 운영 중인 17개의 앱을 개인뱅킹 앱 2개로 나눠 통합하고, 오는 10월 ‘뉴 스타뱅킹’을 출시한다. 신한은행은 기존 앱 6개를 하나로 통합한 ‘신한 쏠’(SOL)’을, 하나은행도 통합앱 ‘하나원큐’를 운영하고 있다. NH농협은행도 올해 말 기존의 7개 앱을 NH스마트뱅킹, NH기업스마트뱅킹, 올원뱅크 등 3개 앱으로 통합한다.

서울 시내 한 시중은행의 비대면 대출 광고 모습./연합뉴스

시중은행은 인터넷은행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비대면 영업 전환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일부 시중은행의 대출, 예금상품 등의 비대면 거래 비중은 이미 70~80% 수준으로 올라섰다.

현재 시중은행이 가장 눈여겨보는 비대면 상품은 ‘주택담보대출’이다.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주담대 시장은 750조원으로 성장했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은행권의 가계 주담대 잔액(752조2000억원)은 신용대출(277조3000억원)의 2.7배다.

이 시장을 장악하면 인터넷은행의 성장세를 꺾을 수 있다는 게 기존 은행들의 판단이다. 최근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 NH농협은행이 비대면 주담대를 출시한 데 이어 신한은행과 하나은행도 연내 출시를 목표로 상품을 준비 중이다.

개인 신용대출 외에 새 수익원을 아직 확보하지 못한 인터넷은행 입장에선 이런 시중은행의 공격적 행보가 부담이다. 시중은행과 자산 등 기초체력 차이가 여전히 큰데 주택담보대출 시장에서 출혈 경쟁이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 마이데이터 통해 온·오프라인 연계… 부동산 금융·중고차 시장 등 공략

내년부터 허용되는 마이데이터 사업도 시중은행에 새로운 기회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흩어진 금융정보를 기반으로 자산관리 등 다양한 데이터 서비스 제공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시중은행이 눈독을 들이는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와 연계가 수월해진다.

최근 신한은행은 비금융 신사업을 본격 진행하기 위해 O2O 추진단을 만들었다. 음식 주문 중개를 시작으로 향후 숙박 등 다른 영역으로 발을 넓힐 것으로 예상된다.

KB국민은행은 올해 3월 부동산 정보앱 리브온을 개편해 ‘리브부동산’을 출시했다. 시세·실거래가·매물가격·공시가격·예측시세 등 여러 부동산 가격정보를 조회할 수 있다. 단일 부동산 플랫폼으로써 은행고객과의 접점을 제공해 부동산금융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목표다.

기존 개인 간 중고차 직거래와 원더카 직거래 비교도./하나은행 제공

하나은행은 개인 간 중고차 직거래 플랫폼 ‘원더카 직거래’ 서비스, 우리은행은 ‘실손보험 빠른청구 서비스’를 선보였다. 또 시중은행은 ‘메타버스’를 활용한 가상점포 구축 등 새로운 비대면 영업을 위한 테스트에 한창이다.

시중은행의 디지털 전환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은행 조직 규모가 큰 만큼 디지털 전환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데 ICT부서가 변화를 주도할 권한은 부족하고 기존 직원들도 비협조적인 분위기가 있다”라고 말했다.

◇ 조직개편 효과 없다면 별도 인터넷은행이나 꼬마뱅크 설립 가능성도

시중은행은 조직개편에 나서며 디지털 관련 부서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올해부터는 디지털 업무를 위한 세부 조직도 확대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미래 사업을 이끌 조직에 ‘단’ 명칭을 붙이고 마이데이터플랫폼단·개인마케팅단·리브모바일플랫폼단·미래컨택센터추진단·기관영업추진단·클라우드플랫폼단 등을 꾸렸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기존 1~3부였던 디지털영업부에 4·5부를 추가했다.

같은 시기 하나은행도 조직개편을 통해 디지털리테일그룹에 플랫폼 조직 개념을 도입했다. 플랫폼 조직은 기획과 개발, 영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조직으로 IT 인력과 사업 인력이 한 팀에서 협업하는 형태다. 우리은행도 비대면 서비스를 담당할 ‘WON컨시어지영업부’를 신설한 바 있다.

(왼쪽부터)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사옥 전경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시중은행의 디지털 경쟁력이 최근 많이 올라왔지만, 아직 인터넷은행과 비교해서는 부족하다”며 “넓은 고객 기반과 금융전문인력 등 시중은행이 인터넷은행에 가진 비교우위를 비대면 환경에서 어떻게 잘 조화를 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만약 이 같은 노력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결국 금융지주를 중심으로 시중은행과 별도의 인터넷은행 계열사 설립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올해 초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이 독자적인 인터넷은행을 설립하기 위해 금융위원회와 의견을 조율한 바 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7일 ‘국내 은행산업의 구조 분석과 향후 진입 정책’ 보고서를 통해 “단기적으로 정책당국은 인터넷은행이나 벤처투자 전문 은행 등과 같은 가칭 ‘꼬마뱅크’ 설립을 기존 은행에도 허용해 참여자 간 공정경쟁의 여건 조성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