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행이 사실상 신용대출을 제외한 모든 가계대출의 신규 취급을 11월 말까지 중단하는 초강력 대책을 내놓으면서, 여타 시중은행에도 비상이 걸렸다. 기존 농협은행 대출의 재약정 수요뿐 아니라, 신규 대출 수요까지 타행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여신고 관리의 고삐를 더 조여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농협은행처럼 연간 대출 목표치에 이미 다다른 일부 은행은 더욱 긴장하는 분위기다.

20일 은행권에 따르면 농협은행은 오는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가계 부동산 담보대출, 전세대출, 비대면 아파트담보대출, 단체승인대출(아파트 집단대출) 등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그나마 신규 취급이 유일하게 가능한 신용대출 역시 당국 권고에 따라 최고 한도를 연소득 이내, 최대 1억원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서울 종로구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연합뉴스

농협은행의 대규모 대출 중단 사태 주요 원인은 우선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컸던 데 있다. 지난해 말부터 금융당국은 시중은행들에 가계부채 총량을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는 신호와 압박을 계속 줘 왔다. 그 일환으로 모든 시중은행들로부터 ‘연간 증가율 5%’에 버금가는 연간 대출 목표치를 제출받고, 이를 매달 점검해 왔다. 올해 1~7월치를 점검한 결과, 농협은행의 증가율이 7.1%로 연간 목표치를 이미 넘어섰던 것이다.

연간 목표치를 초과하진 않았지만, 이미 근접한 은행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로선 하나은행이 연간 목표치에 거의 도달해 있는 상황으로 보이고, KB국민·신한은행 등은 연간 목표치의 절반 정도를 채운 상황으로 비교적 여유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연간 목표치를 12분의 7(12개월 중 7개월 치)로 계산했을 때 이를 미세하게 넘어선 은행들이 일부 있었으나, 추후 관리를 통해 연말까지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문제는 농협은행의 대출 중단으로 다른 은행으로 대출이 몰리면 타행의 대출 총량 관리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에서 대출이 막히면 다른 시중은행으로 수요가 몰리는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어 8월 이후 급격히 대출이 증가하진 않을까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은행들은 최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받지 않는 1억원 이하 신용대출 한도를 연봉보다 적은 금액으로 제한하라는 금융당국의 권고를 받고 나서 이를 시행에 옮기기 위해서 타행 눈치를 보던 분위기였다. 그러다 농협은행이 신용대출에 대해서도 연소득 이하로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물꼬를 튼 셈이 됐다.

고승범 금융위원장 내정자 역시 가계부채 억제를 핵심 정책 방향으로 내걸며, 추가 가계대출 규제 가능성까지 시사하는 등 시중은행에 대한 대출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지난해 연말 은행권 대출이 일괄 막혔던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예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당장 대출을 한시 중단하거나 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가계대출 증가세가 잡히지 않는다면 연말이 다가올수록 연쇄 대출중단 사태가 빚어지는 것이 아주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는 이날 오전 11시 농협은행·농협중앙회를 소집해 이번 대출 중단 결정과 가계대출 관리 방안 계획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