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바이낸스 등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해서 국내와 동일한 규제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는 9월 24일까지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에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은행에 실명 확인 계좌를 발급받아야 한다. 사실상 바이낸스 등을 통한 가상화폐 거래를 막겠다는 것이다.
22일 한 금융위 관계자는 “원화나 미 달러화 등 법정 화폐로 가상자산을 사고파는 거래소는 모두 실명 확인 계좌를 발급받고 FIU에 신고를 해야 한다”며 “해외 거래소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고 말했다.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은 가상화폐 거래소 등 가상자산 사업자는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등의 요건을 갖추고 9월 24일까지 사업자 신고를 해야 한다. 또 가상자산 사업자는 신고가 수리된 이후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금융당국의 이 같은 입장은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매매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해외 거래소인 바이낸스는 규제를 피하기 위해 본사 소재지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바이낸스가 실명 확인 계좌를 발급받거나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을 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셈이다.
금융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FIU는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에 대한 구체적인 입장과 대응 조치 등을 발표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관계자는 “조만간 구체적인 대응 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3일 국회 정무위에서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원화결제를 하는 경우 FIU 등록 대상이고 그렇지 않으면 영업을 못하게 할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금융위는 21일 윤창현 의원실(국민의힘)의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서에서 “외국 가상자산 거래업자들이 FIU에 신고하지 않고 내국인(한국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것은 불법”이라며 “선고 유예 기간 종료 이후 대응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또 “이용자들에게 외국 가상자산 거래업자의 미신고 영업은 불법임을 알릴 것”이라며 “이용하지 않도록 홍보할 계획”이라고도 했다.
문제는 국내 투자자들이 바이낸스를 이용할 때 리플 등 가상화폐를 국내에서 매입한 뒤, 이를 현물 형태로 직접 보내는 방식을 취한다는 것이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는 “리플은 가상화폐 가격이 높았던 지난 4월 하루 최대 거래량이 2조원에 달할 정도로 매매가 많이 이뤄졌다”며 “상당수는 바이낸스 등에 가상화폐를 보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 같은 행태를 어떻게 규제하느냐가 앞으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업계 안팎에서는 가상화폐 직접 송금에 대해 외국환거래법이나 관세법을 적용해 규제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관세청은 지난 7일 가상화페를 이용한 불법 외환거래를 대거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불법 거래 규모는 1조6900억원였다. 관세청은 ▲해외에서 매입한 가상 자산을 국내에 반입하거나 ▲무역대금이나 유학자금으로 속여서 해외에 송금한 뒤 가상자산을 매입하거나 ▲가상화폐를 해외에 직접 보내는 방식으로 외환 송금 규제를 회피하는 행위 등을 문제 삼았다.
이 같은 규제·단속은 가상화폐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외국환거래법이 규정하는 증권 요건에 부합하지 않지만, 해외 거래소가 국내 가입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채권으로 간주하거나 가상화폐 이전을 일종의 디지털 밀수로 규정하는 방식이다. 또 매매 차익을 국내로 반입하려고 할 경우 소득세법 위반 혐의로 규제하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국내 가상화폐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해외 거래소는 바이낸스와 바이낸스가 운영하는 가상화폐 기반 대출 중개 서비스인 비너스다. 바이낸스는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다. 창펑 자오(赵长鹏) CEO 등이 만든 중국계 거래소이지만, 규제를 피하기 위해 회사 정보를 일체 공개하고 있지 않다. 바이낸스에서는 가상화폐 관련 선물·파생 상품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국내 투자자들도 많이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