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과 네이버, 카카오(035720) 같은 빅테크 사이에서 영역 확보에 안간힘을 쓰는 저축은행 업계가 업종을 가리지 않고 외부에서 디지털 인재를 영입하고 있다. 자본과 영업 능력에서 월등히 앞서는 시중은행·여신업계 같은 경쟁자들에 뒤쳐지지 않으려면 이전처럼 창구 영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위기감이 커지는 데 따른 결과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저축은행 3위권인 페퍼저축은행은 최근 카카오뱅크 사외이사를 지낸 마이클재욱진 셰어러블에셋 대표이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임기는 3년으로, 오는 2024년 5월 25일까지다. 진 이사는 1967년생으로, 미국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했다. 이후 글로벌 금융사 UBS를 거쳐 하나UBS자산운용의 대표직을 맡았고, 최근에는 카카오뱅크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자산 규모가 1조원을 넘는 주요 저축은행 가운데 인터넷은행 임원 출신 인물을 사외이사로 영입한 첫 사례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진 이사는 하나UBS자산운용 대표 경험과 핀테크 업계 경험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며 “글로벌 자본시장과 은행, 자산운용업계에서 쌓은 경험이 페페저축은행의 디지털 다각화 전략을 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했다.

다른 저축은행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저축은행 업계는 영업 방식을 영업점 창구 중심에서 앱(애플리케이션) 등 비대면 디지털 금융 형태로 빠르게 바꾸고 있다. 자연스럽게 빅데이터나 블록체인, 핀테크처럼 다양한 디지털 부문을 아우르는 외부 인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는 모습이다.

디지털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판도 커졌다. 금융당국과 여신사, 대형 IT기업을 가리지 않고 실력있는 인재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특히 오픈뱅킹으로 저축은행 앱에서도 시중은행 계좌 조회와 입출금이 가능해진 만큼, 여·수신과 연계한 차별화된 디지털 서비스가 업계 명암을 가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그래픽=정다운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은 지난해 하반기 디지털 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정인화 전(前) 금융감독원 핀테크현장지원단장을 상임이사로 임명했다. 직책은 상근 감사위원이다. 정 감사위원은 금감원에서 IT감독실장, 개인정보보호 TF(태스크포스) 실장 등을 역임한 디지털 금융 전문가다. SBI저축은행에서는 디지털 금융 관련 리스크 관리와 소비자 보호 역할을 맡은 것으로 보인다.

페퍼와 3위권을 놓고 다투는 웰컴저축은행 역시 지난해 9월 디지털본부장 자리에 티몬과 메리츠금융서비스, 삼성SDS를 거친 백인호 이사를 선임했다. 백 이사는 지난 2015년부터 3년간 이커머스 ‘티몬’에서 자영업자를 위한 전용 쇼핑몰 ‘비즈몰’과 금융몰 서비스를 책임졌다. 2018년부터 지난해 6월까지는 B2B금융솔루션 핀테크 기업인 ‘고위드’로 적을 옮겨 스타트업을 위한 법인카드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기여했다.

애큐온저축은행은 카드업계 1위인 신한카드 출신 김정수 전무를 디지털혁신부문장으로 재선임했다. 김 전무는 신한카드에서 몸담으면서 미래사업본부장, 디지털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신한카드 재직 당시 앱카드에 ‘손가락 생체 인식 결제’를 도입하는 등 혁신 결제 방식을 적용하고, 블록체인 기반 금융 서비스 출시를 추진한 전력이 있다.

NH저축은행은 지주사 핵심인 NH농협은행에서 디지털금융부문 부문장을 지냈던 남영수 부문장을 NH저축은행 신용관리본부 총괄 담당으로 영입했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업권 특성상 기존에도 순혈주의가 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외부 초빙인사는 시중은행이나 자산운용사, 증권사 출신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강했다”며 “지난달부터 본격적으로 오픈뱅킹 시장이 열리자 앱을 고도화하고, 비대면 서비스를 강화하려면 디지털 금융 전문가를 빨리 모셔와야 한다는 위기감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