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시장을 가장 잘 보여주는 종목은 마일벌스다. 이 가상화폐는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소비자가 적립한 마일리지를 가상화폐로 바꾸어 자유롭게 교환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서 출발했다. 마일벌스 서비스 운영회사인 트루스트체인은 서비스를 시작하기 4개월 전인 지난해 10월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원에 마일벌스를 상장했다. 그리고 서비스가 시작된 올 1월 빗썸으로 상장 거래소를 확대했다.

2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빗썸 강남센터 라운지 전광판에 가상화폐 시세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국내 거래소 두 곳에서만 거래되는 마일벌스는 4월 10일 635원(코인원 기준)까지 올랐다가 급락해 현재 48원 수준에서 거래된다. 고점 대비 92.4% 하락한 셈이다. 마일벌스는 4월 상순 코인원, 빗썸 거래량의 5% 이상을 차지할 만큼 거래가 활발히 이뤄졌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는 마일벌스에 대해 “국내 가상화폐 거래 시장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의 핵심 상품 대신 ‘알트(alt·대안 내지는 대체)코인’ 비중이 유독 높은 데다, 알트코인의 변동성도 극심하다는 것이다. 알트코인 상당수는 이른바 ‘잡(雜)코인’이라 불리오기도 한다.

가상화폐 마일벌스의 일별 가격 추이. /빗썸

박 교수는 지난 28일 한국금융학회 세미나에서 ‘한국 암호자산 시장의 고유한 특성(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Korean Crypto Asset Market)’이라는 주제로 국내 가상화폐 시장을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박 교수는 금융·거시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소장 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자본시장연구원과 청와대 경제수석실 등에서 근무해 현안에 대한 이해가 높다는 평가다.

국내 가상화폐 시장의 가장 큰 특징으로 박 교수는 “알트코인 거래 비중이 현격히 높다는 것”을 들었다. 가상화폐 가격이 가장 높았던 지난 4월 첫째 주 현재 국내 가상화폐 일일 거래량은 20조원 이상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글로벌 가상화폐의 대표 주자인 비트코인 거래량은 최대 9000억원에 불과했다. “글로벌 거래량의 1%에 못미치는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비트코인은 글로벌 가상화폐 시가총액의 54%를 차지한다.

2021년 4월 12일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의 가상화폐별 거래량 순위. 리플, 스트라이크, 스트라티스, 비트토렌트 등 알트코인이 거개량 1~4위를 차지하고 있다. /박선영 동국대 교수

대신 알트코인은 활발히 거래됐다. 알트코인 대표 주자인 ‘리플’의 경우 이 기간 동안 하루 최대 거래량이 2조원에 달했다. 글로벌 가상화폐 시장에서 리플의 비중은 3%다. “바이낸스 등 해외 거래소에 가상화폐를 보낼 경우 수수료가 싼 것이 국내에서 리플이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로 추정된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리플을 몰타 소재 중국계 거래소인 바이낸스로 보낸 뒤, 바이낸스에서 허용되는 가상화폐 기반 선물·옵션 투자에 나서는 행태가 널리 퍼져있어 국내 거래소에서도 각광을 받는다는 것이다. 리플은 이른바 ‘동전주’(가격이 싼 가상화폐)로 가격 변동성도 큰 편이라 단타 매매로 수익을 내려는 개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자산이기도 하다.

개인 투자자 위주 시장이라는 것도 국내 가상화폐 시장의 특징으로 거론됐다. “비트코인 등을 일부 기관투자자가 인플레이션 헷지(hedge·위험 분산) 수단으로 사용하곤 하는 미국 등과 달리 한국 가상화폐 시장은 100% 개인 투자”라며 “성인의 3분의 1가량이 참여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금융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업비트, 빗썸, 코빗, 코인원 등 4대 가상화폐 거래소 가입자는 581만명에 달한다.

다른 금융자산과 비교해 가상화폐 투자 비중이 높다는 것도 한국의 특징이었다. “글로벌 가상 화폐 시장에서 한국의 비중은 20% 수준일 것으로 추정된다”며 “경제 규모나 금융투자 시장 규모에 비해 과도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는 것이 박 교수의 설명이다. 주식의 경우 글로벌 시가총액의 2%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4월 16일 현재 가상화폐 정보 서비스 코인힐스에 다르면 비트코인 매매 거래 중 5.5%가 한국 원화로 이뤄졌다. 달러화(80.0%), 유로화(5.7%) 다음이었다. “국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비중이 낮은 편이라는 걸 감안하면 실제 한국의 가상화폐 거래 비중은 더 클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국내 가상화폐 시장은 다른 나라에 비해 규모가 크지만, 가격 변동 요인은 주로 해외 시장에서 왔다. “시장 크기에 비해 주도권이 없다는 게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 큰 위험요인”이라며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말 한 마디에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 대표적”이라는 설명이다.

가상화폐 직접 전송 등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간 자금도 상당할 것으로 박 교수는 분석했다. ’'은행 실명 계좌가 연동된 거래소 기준으로 지난 1년 간 127조원이 입금되었는데, 출금된 금액은 105조원에 불과하다”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해외로 빠져나갔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가상화폐 가운데 알트코인 관련 규제와 관리감독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알트코인의 경우 일종의 운영 계획인 ‘백서’가 제대로 요건을 갖추지 않고 있는 경우가 수두룩하다”며 “운영 주체, 소유 구조 등도 불분명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또 “기존 상품권과 구분이 어려운 증권적 성격의 가상화폐의 경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처럼 증권으로 분류해 규제하는 것도 모색해야한다”고 덧붙였다. “굳이 가상화폐라는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는 결제수단의 경우 별도의 법적 근거를 제공해야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