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 대부분이 가상화폐거래소와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200여곳의 가상화폐거래소들은 오는 9월까지 고객 실명계좌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집단 폐쇄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시중은행 중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은 가상화폐거래소와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체결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
오는 9월 특정금융거래정보법(특금법) 개정안 시행으로, 앞으로 가상화폐거래소가 영업하기 위해선 은행으로부터 실명 입출금 계좌를 받아야 한다.
당초 은행들은 가상화폐거래소와의 제휴에 긍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고객들을 유치해 계좌 확보, 수수료 등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가상화폐 시세가 폭락하면서 입장이 바뀌었다.
자칫 투자자들이 ‘은행의 검증과 은행과의 거래를 믿고 투자했으니 은행에도 책임이 있다'라는 식의 논란을 제기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가상화폐거래소로부터 얻을 수 있는 수수료 이익보다 금융 사고가 날 경우 은행 이미지에 끼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의견이 나온다”라고 말했다.
현재 국내 가상화폐거래소 가운데 시중은행과 실명 계좌를 튼 곳은 코빗·빗썸·코인원·업비트 4곳뿐이다. 코빗은 신한은행, 빗썸·코인원은 NH농협은행, 업비트는 케이뱅크와 제휴 중이다. 이 거래소들도 오는 6월과 7월 말 사이 시중은행과의 계약 만기를 앞두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은행연합회가 마련한 ‘가상자산사업자거래소 자금세탁방지 위험평가 방안’에 따라 가상화폐거래소는 ▲회사의 대주주 성격 ▲재무 안정성 ▲고객확인(KYC) 매뉴얼·시스템 ▲요주의 인물 필터링(색출) 시스템 ▲의심거래 보고체계 등 총 고유위험 16개 항목과 통제위험 87개 항목을 충족해야 한다.
업계에선 이러한 검증을 통과할 수 있는 가상화폐거래소가 소수에 불과할 것으로 전망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연합회에서 제시된 방안보다 더 강화된 기준으로 검증을 진행한 뒤 제휴 거래소와의 재계약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가상화폐거래소 집단 폐쇄가 현실화되면 투자자 피해가 우려된다. 한 가상화폐거래소 관계자는 “비트코인같이 대형코인 투자자는 가상화폐 지갑을 통해 다른 거래소로 옮길 수 있지만, 거래소들이 직접 ‘셀프 상장’한 알트코인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자산을 모두 잃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