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달러화 대비 원화(원·달러) 환율이 고공 행진을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환(換) 헤지(hedge·위험 회피)에 나서는 게 옳은 결정이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연금의 공공성과 시장 영향력을 고려하더라도 환율 방어를 이유로 손실 가능성이 큰 외환 정책에 국민 노후자금을 동원하는 게 맞느냐는 주장이다.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에서 상담이 이뤄지고 있다. / 뉴스1

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 2일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국민연금 내부 결정에 따라 곧 국민연금에서 환 헤지 물량이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국민연금의 환 헤지는 보유 중인 해외자산 일부를 선물환으로 매도하는 식으로 이뤄진다. 달러 매도이므로 원·달러 환율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환율 방어가 시급한 한은으로선 국민연금의 환 헤지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해외 투자에 따른 외환 익스포저(위험 노출)는 헤지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다만 기금운용본부 자체 판단에 따라 해외자산의 5%는 환 헤지할 수 있다. 여기에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기금운용위원회 논의를 거쳐 최대 10%까지 전략적 환 헤지를 추가 시행할 수 있다. 전략적 환 헤지 조건이 공개된 적은 없지만, 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450원 아래로 내려가고 그 상태가 5거래일 넘게 이어질 때로 본다. 즉 국민연금의 기본 원칙은 환 오픈이고, 전체 해외자산의 15%까지는 재량껏 헤지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의 환 헤지가 정말로 자체 판단에 따른 게 맞느냐는 점이다. 올해도 고환율 흐름이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정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IB)의 2025년 1분기 말 원·달러 환율 전망치(2024년 12월 24일 기준) 중간값은 1435원에 달한다.

조선 DB

IB들은 심지어 원·달러 환율이 2분기 말 1440원, 3분기 말 1445원 등으로 점점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환율이 2분기 중 1500원까지 치솟고, 3분기 말까지 그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만약 글로벌 IB들의 전망이 맞는다면 현시점에서 국민연금의 환 헤지는 환차익 기회를 스스로 날리는 의사결정이 된다.

이렇다 보니 시장에선 정부가 손실 우려가 있는 외환 정책에 국민 노후자금을 투입하는 게 정당하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부가 환율 방어에 국민연금을 동원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앞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섰던 2022년 11월에도 정부는 국민연금에 환 헤지 비율 확대를 요청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전술적 환 헤지 규모를 73억달러 이상 늘린 데 이어 전략적 환 헤지 비율도 0%에서 10%로 상향 조정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환율 방향성을 예단할 수 없는 만큼 섣부른 평가는 자제해야 한다”면서도 “수익성 극대화에 방점을 두고 기금 고갈 지연에 총력을 다해야 할 국민연금이 정부 정책에 동원되는 모습을 자주 노출하는 게 옳은지는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서울 명동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한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 뉴스1

한편 시장에선 고환율 장기화가 해외 투자 비중을 지속해서 늘려가는 국민연금에 부담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가 원화 가치의 추가 하락을 부추겨 환율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승호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작년 8월 발표한 ‘우리나라의 해외증권 투자 현황과 외환시장에 대한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원·달러 환율은 해외주식 투자는 물론 해외채권 투자에 대해서도 통계적으로 유의한 양(+)의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이 연구위원은 “해외증권 투자가 계속 확대될 것”이라며 “그에 따른 외환 수요 증가가 환율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민연금은 기금 적립금 1170조5540억원(2024년 10월 말 기준) 가운데 35.6%에 해당하는 416조1400억원을 해외주식에 투입하고 있다. 해외주식의 7할은 북미 지역에 집중된다. 해외채권(83조8240억원)과 해외 대체투자까지 고려하면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비중은 50% 이상으로 커진다.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비중은 오는 2028년 60%까지 확대된다.

이와 관련해 박선영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가 환율 흐름에 일부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기금이 연간 100조원씩 불어나는 상황에서 (해외 투자는)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지금처럼 한국은행과의 외환 스와프 거래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