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석 달을 맞은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의 야심작 디딤펀드가 어수선한 시장 분위기에도 준수한 성적표를 유지하고 있다. 디딤펀드는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퇴직연금 상품인데, 출시 이후 수익률만 보면 생애주기펀드(TDF·Target Date Fund)를 오히려 소폭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딤펀드는 주식 편입 비율을 50% 미만으로 제한하고 5% 안팎의 시장 중립적 성과를 추구하는 퇴직연금 상품이다. 은퇴 시점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주는 TDF가 장악하다시피 한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 보다 안정적인 성격의 ‘메기’ 상품이 필요하다는 서유석 금투협회장 뜻에 따라 등장했다. ‘디딤’이라는 브랜드 이름도 서 회장이 직접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24일 펀드 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올해 9월 25일 공식 출시된 디딤펀드 25개의 평균 수익률(19일 종가 기준)은 2.75%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가 2596.32에서 2435.93으로 6.18%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꽤 선방한 셈이다.
25개 디딤펀드 가운데 23개는 플러스(+) 수익률, 2개는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이 중 수익률이 가장 높은 펀드는 7.91%를 기록한 삼성자산운용의 ‘삼성디딤밀당다람쥐글로벌EMP’다. 삼성자산운용이 자체 개발한 경기 국면 모델을 토대로 글로벌 주식과 채권 투자 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절하는 상품이다.
반대로 수익률이 가장 저조한 펀드는 -3.66%를 기록 중인 IBK자산운용의 ‘IBK디딤인컴바닐라EMP’로 나타났다. 이 상품은 전 세계 열 인컴 자산(이자 등 정기 소득을 창출하는 자산)에 분산투자하는 펀드다.
디딤펀드가 목표로 하는 수익률(5% 안팎)은 원금 보장형 상품과 TDF 기대 수익률의 중간 정도에 해당한다. 그런데 출시 이후 현재까지 성과만 놓고 보면 디딤펀드가 TDF를 살짝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출시된 TDF 186종의 9월 25일 이후 수익률은 평균 2.73%다.
다만 상품별 최고 수익률을 보면 TDF가 앞선다. TDF 수익률 1위는 10.70%를 기록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한국투자TDF알아서골드2080′이다. 은퇴 시점을 2080년으로 잡고 장기간 투자하는 상품이다. 주식 비중을 높이는 동시에 주식과 상관관계가 낮은 금(金)을 함께 편입해 위험 대비 수익률을 개선한 것이 이 펀드의 특징이다.
디딤펀드 출시 전에는 성공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전망이 많았다. 중위험·중수익을 추구하는 밸런스펀드(BF)가 이미 시장에 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펀드 최대 판매처인 은행에서는 디딤펀드를 취급하지 않는다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꼽혔다. 자산운용사가 TDF 등 기존 자사 퇴직연금 상품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디딤펀드에 공을 들일지 미지수라는 반응도 많았다. 실제로 디딤펀드로 유입되는 자금은 TDF에 비하면 미진하지만, 운용 성적만 놓고 보면 밀리지 않는 상황이다.
금투협은 디딤펀드가 TDF보다는 원금 보장형 퇴직연금 가입자를 끌어오는 걸 목표로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투협 관계자는 “디딤펀드는 국민연금처럼 주식·채권·대체자산 등에 분산투자해 예금만큼 안정적이면서도 동시에 예금보다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한다”며 “노후자금을 반드시 지키려는 보수적 성향의 가입자 중 은행 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희망하는 수요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