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상장된 국내 기업이 자회사를 물적 분할한 뒤 중복 상장하는 경우가 빈번한 가운데 아예 이를 투자 전략으로 활용하자는 조언이 나왔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하면 기업 가치가 중복(더블 카운팅)돼 모회사의 주가는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IBK투자증권이 과거 사례를 분석한 결과, 신규 상장 기업을 사고 기존 상장 기업을 파는 식의 전략은 상장 60일 기준으로 10% 넘는 성과를 기록했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 한국의 중복 상장 비율은 유난히 두드러진다. IBK투자증권이 특정 회사의 전체 시가총액에서 상장사가 보유한 타 상장사 지분의 시장 가치 비중을 계산한 결과, 미국은 0.35%에 불과한 반면 한국은 18%에 달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4.38%, 대만은 3.18%다. 김종영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중복 상장 비율은 비정상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중복 상장이 문제인 건 필연적으로 해당 기업의 주가 하락으로 이어져서다. 모회사의 가치는 자체사업부문과 자회사의 지분가치의 합이다. 하지만 자회사가 분할 상장돼 독립적으로 유통되면 시장은 모회사가 보유한 자회사의 지분가치를 할인해 평가할 수밖에 없다. 2022년 LG화학의 배터리 사업부가 분리돼 LG에너지솔루션으로 상장하면서 LG화학의 주가가 떨어진 것도 이 탓이다.
SK하이닉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밑도는 이유도 김 연구원은 중복 상장에서 찾았다. 그는 “기업 점유율, 경쟁력 연구개발(R&D) 등 모든 면에서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 대비 우수하다”면서도 “SK하이닉스의 PBR은 2013년 이후 단 한 번도 마이크론 대비 높았던 구간이 없다”고 했다.
주주환원, 미국 프리미엄 등 여러 요인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김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PBR이 마이크론보다 낮게 된 최초의 시점에 주목했다. 김 연구원은 “SK하이닉스가 SK텔레콤에 인수된 건 2012년 상반기”라며 “이때부터 SK하이닉스의 이익 일부가 SK텔레콤, SK에 걸쳐지는 더블 카운팅 이슈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위원회가 물적분할 후 5년 이내에 자회사를 상장할 경우 상장 심사를 강화하는 등의 제도를 만들긴 했지만 여전히 법의 사각지대는 있다. 5년 이후에 상장하면 되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상장의 시차를 두면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신규 상장 기업은 사고, 기존 상장 기업은 팔아 물적분할 이벤트에 대응하는 게 적합하다고 했다. 김 연구원이 2016년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코스피 더블 카운팅 대상 신규 기업의 주가를 분석한 결과, 상장일부터 상장 60일까지 이들 기업은 7.5% 상승했다.
반면 기존 기업은 이 기간 4.8% 하락했다. 신규 상장 기업을 사고, 기존 기업을 팔았으면 7.5%의 수익률을 얻는 데다가 4.8%의 내림세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 연구원은 “(신규 상장 기업 롱, 기존 상장 기업 숏 전략을 사용했을 때의) 성과는 12.4%”라고 했다.
다만 코스닥 기업에선 이 전략이 먹히지 않았다. 신규 상장 기업의 성과가 마이너스(–) 5.41%로 부진하면서다. 그는 “(코스닥 시장에선 기존 상장 기업에 대해) 오직 매도 전략만 의미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