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한 국내 10대 그룹 지주사 중 처음으로 가치제고(밸류업) 계획을 공시한 SK를 시작으로 다른 지주사들도 밸류업 공시에 나설지 시장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부분의 지주사 주가가 저평가 상태여서다. 전문가들은 지주사의 밸류업 공시 자체도 의미 있겠으나, 그 내용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계열사 성과를 활용하는 배당 성향 개선보다는 자사주 매입·소각이 더 효과적일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 코스피 평균에도 못 미치는 지주사 PBR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29일 기준 지주회사 체제를 택한 주요 10개 그룹 지주사(LG·SK·HD현대·한진칼·LS·GS·CJ·두산·롯데지주·한화)의 평균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80으로 나타났다. 이는 코스피 전체 평균 PBR 0.91을 밑도는 수준이다. PBR은 기업이 보유한 순자산 대비 주가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다. 통상 PBR이 낮으면 해당 기업 주식은 저평가됐다고 해석한다.
0.80마저도 두산(2.21)과 한진칼(2.09)이 평균을 끌어올려 준 덕에 나온 수치다. 이 두 곳을 뺀 나머지 8개 지주사의 평균 PBR은 0.47로 코스피 평균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개별 기업으로 보면 두산·한진칼에 이어 HD현대 PBR(0.78)이 높았다. 그 뒤를 CJ(0.64), LS(0.63), LG(0.46), SK(0.41), GS(0.30), 롯데지주·한화(0.25)가 따랐다. 지주사 대다수가 심각한 저평가 상태라는 의미다.
지주사 디스카운트의 원인은 뭘까. 전문가들은 한국 특유의 기업 지배구조 문화에서 나온 ‘쪼개기 상장’을 대표적인 배경으로 꼽는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2017~2021년 한국의 모자(母子) 기업 동시 상장 비중은 19.3%에 이른다. 5.7% 수준인 미국의 3.4배다. 물적 분할 후 모자 기업을 나란히 상장시켜 소유와 경영을 일치하려는 시도에서 나온 독특한 현상이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수년 새 물적 분할과 쪼개기 상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면서 지주사의 투자 매력도도 추락했다”며 “과거에는 여러 계열사 중 한 곳이 잘 되면 지주사 주가도 함께 오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반대로 계열사의 부정적인 소식에 지주사 주가가 동반 하락하는 일이 더 빈번해졌다”고 했다.
◇ SK 첫 공시 이어 LG도 곧 발표
이런 상황에서 지난 28일 SK(034730)가 지주사(금융권 제외) 최초로 밸류업 계획을 자율공시했다. 경영 실적이나 경상 배당 수입의 변동과 무관하게 주당 최소 5000원(보통주 기준)의 배당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연간 2800억원 규모의 최소 배당을 약속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또 SK는 시가총액 1~2% 규모의 자기주식을 매입·소각하거나 추가 배당을 하겠다는 환원책도 제시했다.
시장에서는 SK의 첫 자율공시를 시작으로 다른 주요 그룹 지주사도 밸류업 공시에 서서히 동참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시 자체만 놓고 보면 LG(003550)가 이미 지난 8월 29일에 밸류업 계획을 곧 내놓겠다고 예고(안내공시)한 상태다. 박종렬 흥국증권 연구원은 “LG전자·LG화학 등 자회사 지분 추가 매입과 함께 향후 자사주 활용 방안을 비롯한 주주환원율(SRR) 제고와 관련한 밸류업 계획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지주사의 밸류업 계획 공시가 극적인 주가 반등으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고질적인 저평가 해소에는 일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또 밸류업 계획의 세부 내용에 따라 시장 반응은 엇갈릴 수 있다고 했다. 배당 성향 개선에 방점을 둔 회사보다 자사주 매입·소각에 초점을 맞춘 지주사가 더 환영받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배당 성향 개선은 계열사들이 번 돈을 모아서 푸는 것이다 보니 마냥 긍정적으로 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며 “지주사가 자사주 매입·소각을 강조한다면 주가 반등에는 훨씬 효과적일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