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가 반도체 업황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를 잇달아 발간했습니다. 8월에 낸 보고서 제목은 ‘반도체 업황 고점을 준비하라’입니다. 이어 추석 연휴 기간이던 이달 15일에는 ‘겨울이 곧 닥친다’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코스피 시가총액 2위 SK하이닉스(000660)의 목표주가를 26만원에서 12만원으로 확 낮췄습니다. 투자 의견도 ‘비중 확대’에서 ‘비중 축소’로 두 단계나 하향 조정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명절이 끝나고 19일 다시 열린 증시에서 SK하이닉스 주가는 6.14% 급락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빅컷(기준금리 0.5%포인트 인하) 소식도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쓰러지는 SK하이닉스 주가를 일으켜 세우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반도체주에 대한 모건스탠리의 냉정한 평가, 어딘가 낯이 익습니다. 시간을 6년 전인 2018년 8월로 되돌려보죠. 당시에도 모건스탠리는 ‘가장 인기 없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해 SK하이닉스를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이 증권사는 “D램 호황이 끝나가고 낸드플래시는 공급 과잉”이라며 이때도 SK하이닉스 투자 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비중 축소’로 두 단계 낮췄습니다. 당연히 기업 주가는 크게 흔들렸고요.
코스피 시총 1위 삼성전자(005930)도 모건스탠리의 냉혹한 평가에 주가 추락을 맛본 경험이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주당 가격을 낮추는 액면분할을 통해 황제주에서 국민주로 변신하기 전인 2017년 11월 26일, 모건스탠리는 “반도체 메모리 사이클이 곧 정점을 찍을 것”이라며 삼성전자 주식 매도를 권하는 보고서를 냈습니다. 당시 300만원 가까이 치솟으며 훨훨 날던 삼성전자 주가는 다음날부터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사실 외국계 증권사가 매도 보고서를 내고, 시장이 거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모건스탠리에만 해당하는 일은 아닙니다. 셀트리온(068270)의 경우 2018년 1월 일본계 증권사 노무라증권과 독일계 증권사 도이치방크가 연이어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내자 주가가 급락했고, 같은 해 7월에는 호텔신라(008770) 주가가 씨티증권의 매도 의견에 휘청였습니다.
한국 주식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대형주 거래 비중이 큽니다. 전문가들은 이들 외국인이 한국 증권사보다는 외국계 증권사의 기업 분석을 더 신뢰하다 보니 매도 보고서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도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외국계 증권사가 한국 증권사보다 객관적으로 시장을 판단한다는 인식이 외국인 투자자에게 퍼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모건스탠리가 SK하이닉스에 대한 매도 의견 보고서를 공개하기 이틀 전인 이달 13일, 모건스탠리 서울지점 창구에서 SK하이닉스 주식 101만1719주의 매도 주문이 체결됐다고 합니다. 전날(9월 12일) 매도량(35만1228주)의 3배에 달하는 수준이네요. 한국거래소는 이 ‘선행매매’ 의혹 조사에 착수한 상태입니다. 부디 외국계 증권사의 행실도 그들의 보고서가 받는 신뢰만큼 믿을만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