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난카이(南海) 해곡 대지진 경계감이 커졌다. 일본 기상청은 규슈 남동부 앞바다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나자 지난 8일 ‘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 정보(거대 지진 주의)’를 발표했다. 2019년 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정보를 운용하고 첫 사례다. 난카이 해곡은 필리핀해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곳으로 우리나라와 가까운 규슈 동부부터 시코쿠 남부, 도쿄 서쪽 시즈오카현까지 이어진다. 짧게는 100년마다 규모 8~9의 대지진이 발생해 왔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를 고려할 때 난카이 해곡 대지진이 발생하면 국내 주식시장도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오후 일본 도호쿠(東北) 태평양 연안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주말이 지나 닛케이225지수는 14일 -6.2%, 15일 -10.6%의 낙폭을 기록했다. 당시 코스피지수도 10일 1981.58에서 15일 장 중 1882.09까지 밀렸다.

그래픽=정서희

그나마 동일본 대지진 때는 국내 증시가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코스피지수는 같은 달 말에 2100선을 뚫었고, 4월 말에는 사상 처음으로 2200선도 돌파했다. 상승 폭이 두드러졌던 업종은 철강, 기계장비, 화학, 자동차 등이었다. 동일본 대지진 발생 후 한달 동안 주가 상승률이 10%를 웃돌았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일본 내 관련 기업이 피해를 보면서 반사이익을 기대한 투자자가 많았다.

다만 난카이 해곡 대지진은 그 영향력이 더 클 것으로 보인다. 난카이 해곡 서쪽부터 동쪽까지 더 많은 기업이 몰려 있어서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오사카, 효고현, 미에현 등에 파나소닉이나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와 같은 전자·반도체 제조기업의 공장이 있다. 시즈오카현을 중심으로 화학·제약 산업이 발달해 있다. 포토레지스트와 에칭 가스 등 반도체에 필요한 원료도 이곳에서 생산한다. 아이치현은 일본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다. 도요타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와 부품 업체가 있다.

김영빈 국제금융센터 책임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도호쿠 지방은 후쿠시마 원전과 같은 에너지업과 농업, 어업이 주요 산업이어서 전 세계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었다”며 “난카이 해곡 주변 지역에는 자동차, 반도체, 화학 등 중요 산업 단지가 있어 대규모 지진이 나면 전 세계 제조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기업이 반사이익을 누리기보다 공급망 불안에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외환시장 상황도 다르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뒤 3월 17일 일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78.25엔까지 하락(엔화 강세)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치였다. 이후 달러가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일본은행이 통화 완화 정책에 나서면서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은 80엔대에서 진정세를 되찾았다.

현재는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 정책에 나선 상황이다. 난카이 해곡 대지진 이후 일본은행이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완화정책으로 갑자기 돌아서면 환율 변동성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달 전 세계 주식시장을 강타한 ‘검은 금요일’과 ‘검은 월요일’의 배경 중 하나로 엔 캐리 트레이드(싼 이자로 엔화를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하는 방법) 청산이 꼽히는 점도 대지진 여파를 더 걱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은 지난 9일 보고서에서 “초대형 지진에 대한 예방적 경고가 단기적으로 엔화 가치를 상승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난카이 해곡 대지진이 발생해) 동일본 대지진 때와 같은 환율 움직임이 반복되면 엔 캐리 트레이딩이 더 청산될 수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난카이 해곡 대지진은 동일본 대지진보다 한국과 가까운 만큼 직접 피해도 발생할 수 있다. 쓰나미(지진해일)로 이어질 가능성 역시 있다. 다만 세상에 예상한 대지진은 없고, 대지진 발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투자하기도 어려운 법이다. 일본 기상청은 지각에 큰 변화가 없으면 오는 15일 오후 난카이 해곡 지진 임시 정보를 해제할 예정이다. 거대 지진 주의가 풀리면 한 고비를 지난 것으로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