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이 4개월 만에 금리를 다시 올렸지만, 엔화의 급격한 강세 흐름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란 증권가 관측이 나왔다. 연내 추가 금리 인상 여부가 불투명하고, 상당 규모의 유동성 공급 정책도 당분간 유지될 것이란 이유에서다.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한 직원이 엔화와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 연합뉴스

31일 일본은행은 전날부터 이날까지 이틀간 개최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단기 정책금리를 0~0.1%에서 0.25%로 인상했다. 일본은행은 올해 3월 회의에서 17년 만에 금리를 올리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종료했다. 이후 열린 두 차례 회의에서는 금리를 동결했고, 이번에 다시 인상했다. 이로써 일본 단기 금리는 0.3% 전후였던 2008년 12월 이후 15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돌아갔다.

앞서 일본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지자 외환시장에서는 급격한 엔화 강세 흐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엔화 강세 분위기는 이어지겠지만, 그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며 “이는 엔 캐리 트레이드(일본 엔화를 빌려 전 세계 주식·채권 등에 투자하는 것) 청산 우려를 진정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박 연구원은 일본은행의 연내 추가 금리 인상 여부가 아직 불투명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물가 흐름과 달리 경기 사이클이 당초 일본은행의 전망보다 부진하다는 측면에서 일본은행이 긴 호흡을 갖고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여지가 커 보인다”며 “이런 분위기는 이번 금리 인상 결정에 대해 2명의 정책위원이 반대한 것에서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최예찬 상상인증권 연구원도 “실질 임금 플러스 전환이 확인되지 않은 점과 수입물가 상승 흐름이 대부분 엔화 약세에서 나타난 점은 지속적인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낮춘다”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와 함께 엔저에 따른 수입물가 상방 압력은 완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일본 정부가 대규모 유동성 공급 정책을 유지한다는 점도 이번 금리 인상이 엔화 강세 속도를 크게 자극하지 않을 배경으로 꼽힌다. 일본은행은 현재 월 6조엔 수준인 국채 매입 규모를 2026년 1분기에 월 3조엔으로 축소하기로 했다. 매 분기 약 4000억엔을 순차적으로 축소한다는 의미다. 다만 일본은행은 2025년 6월 중간 검토를 통해 채권 축소 계획을 재검토할 예정이다.

박상현 연구원은 “일본은행의 양적완화 축소 계획은 시장 기대보다 더딘 속도”라며 “결국 일본은행은 시장 예상보다 빨리 금리 인상을 단행했지만, 양적완화 축소 시기를 지연시킴으로써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려는 포석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박준우 KB증권 연구원도 “자산 매입 규모를 줄이는 속도는 예상보다 느린 대신 금리 인상은 다소 빨랐다”며 “이는 금융 안정을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엔화 흐름의 주도권이 단기적으로 일본은행에서 미 연준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박상현 연구원은 “9월 금리 인하를 포함해 이후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 속도가 달러는 물론 엔화의 추가 강세 속도를 좌우할 것”이라며 “엔화의 급격한 추가 강세 부담은 완화됐지만, 엔 강세 분위기는 원화 흐름 즉 제한적 원화 강세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