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증권사 개인종합자산계좌(ISA) 잔액이 사상 처음으로 은행 ISA를 넘어섰다. 증권사만 취급하는 ‘중개형 ISA’를 통해 고수익과 절세 혜택을 누리려는 투자자가 많아진 영향이란 분석이다. 정부가 ISA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한 만큼 증권사 ISA를 향하는 투자자는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요 증권사들은 각종 이벤트를 실시하며 ISA 고객 유치에 주력하고 있다.
◇ 은행 잔액 앞지른 증권사 ISA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5월 말 기준 증권사 ISA 잔액은 13조9383억원으로 집계됐다. 은행 ISA 잔액인 13조7115억원보다 2000억원 이상 많은 액수다. 4월 말까지만 해도 은행 ISA 잔액이 7000억원가량 많았는데, 한 달 사이 증권 ISA 잔액이 1조원 가까이 불어나며 은행을 앞질렀다. 증권 ISA가 은행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ISA는 예적금·주식·펀드·채권 등의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모아 투자하면서 세제 혜택도 누릴 수 있어 만능 통장으로 불린다. 2016년 3월 신탁형과 일임형 ISA가 먼저 출시됐고, 2021년 3월 중개형 ISA가 추가됐다. 이 중 신탁형은 대부분 예적금으로 운용되고, 보수적인 투자자가 주로 선택한다. 일임형은 전문가가 대신 운용하는 방식으로, 일임 수수료가 발생한다.
가장 늦게 등장한 중개형 ISA는 위탁매매업 허가를 받은 증권사에서만 가입할 수 있다. 국내 상장 주식과 펀드, 채권 등에 직접 투자할 수 있다 보니 인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증권사 ISA 잔액이 은행을 넘어선 것도 투자자들이 중개형 ISA로 몰린 덕이다. 작년 말 9조3911억원이던 중개형 ISA 잔액은 올해 5월 말 13조5579억원으로 5개월 만에 4조원 이상 늘어났다.
◇ 정부 “연내 ISA 세제 지원 강화”
중개형 ISA에 대한 투자자 관심은 올해 들어 확 커졌다. 지난해 1~5월 중개형 ISA 잔액 증가분이 1조2435억원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올해 1~5월 유입 자금은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약 3.5배 불어났다. 지난 1월 기획재정부가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 토론회’에서 “연내 ISA 세제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현행 ISA 납입 한도는 연간 2000만원씩 5년간 총 1억원이다. 기재부는 이 납입 한도를 연간 4000만원씩 총 2억원 수준으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비과세 한도도 늘어난다. 이자·배당소득에 대한 비과세 한도는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확대하고, 서민·농어민용 ISA는 4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확대한다. ISA 가입자가 매년 4000만원씩 3년간 납입(연 4% 이자율 가정)할 경우 세제 혜택은 일반 ISA가 46만9000원에서 103만7000원으로 커진다. 서민·농어민용 ISA가 받는 세제 지원은 66만7000원에서 151만8000원으로 늘어난다.
ISA는 국내 주식과 관련한 배당소득세 등이 비과세되는 것도 장점이지만, 국내 상장한 해외 ETF 매매 차익에 대한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다. 최근 ISA 가입자의 상당수가 해외 ETF 투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현장에서는 이야기한다.
여야 간 입장 차로 시행 여부가 불분명하지만, 내년부터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도입이 예정돼 있다는 점도 투자자들의 ISA 가입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금투세가 도입되면 국내 상장 주식이나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등의 매매 차익이 5000만원을 초과할 때 초과분에 대해 22%에서 27.5%(지방소득세 포함)의 세금이 붙는다. 한 대형 증권사 WM센터장은 “상담 주제의 상당 부분이 절세와 관련 있다”고 했다.
◇ 상품권 주고, 수수료 낮춰주고
잔액 급증과 함께 증권사들의 ISA 고객 유치 경쟁도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주로 상품권을 주거나 중개 수수료를 깎아주는 식으로 투자자를 유혹한다. 키움증권과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은 ISA 계좌를 신규 개설하거나 일정금액 이상 투자하면 상품권 또는 현금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KB증권과 대신증권, 신한투자증권 등은 자사를 통해 ISA 계좌를 개설하면 국내 주식 중개 수수료를 낮게 책정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납입·비과세 한도 상향 조정과 더불어 연내 ‘국내 투자형 ISA’를 도입할 방침이라는 점도 증권사 간 ISA 고객 모시기 경쟁을 치열하게 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현재는 3년 이내에 이자 또는 배당 소득이 연 2000만원을 초과하는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는 ISA에 가입할 수 없다. 정부는 국내 투자형 ISA를 통해 이들도 가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윤향미 유안타증권 GWM반포센터장은 “정부가 ISA에 대한 세제 지원을 확대하기로 발표한 만큼 (ISA의) 실질 수익률은 앞으로 더욱 좋아질 것”이라며 “영업 현장에서도 ISA 개설을 적극 권유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