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를 떠나 해외 증시에서 자산 증식의 기회를 엿보는 투자자가 늘었다. 이들 상당수는 미국을 향했지만, 유럽 주식시장에 투자한 이도 많다. 이 맥락에서 유럽 정치권의 잡음은 거슬린다. 주식 투자자가 가장 싫어한다는 ‘불확실성’을 키울 수밖에 없어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6월 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통화정책이사회가 끝난 후 기자회견에 응하고 있다. / EPA 연합뉴스

프랑스는 조기 총선을 앞두고 마린 르펜의 극우 정당 RN과 마크롱 대통령의 좌파 정당 연합 NPF가 대규모 지출 확대 공약을 앞다퉈 남발하고 있다.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프랑스의 추가 재정 악화는 이미 정해졌다는 의미다. 지난달 말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재정 악화를 이유로 프랑스 국가 신용등급을 11년 만에 AA에서 AA-로 강등했다.

당연히 프랑스 CAC 40 지수도 최근 흔들리고 있다. 특히 프랑스 국채를 대거 보유한 은행 주가가 급락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10년물 국채 스프레드는 순식간에 80bp(1bp=0.01%포인트)까지 확대되며 고점을 갈아치웠다. 이영주 하나증권 연구원은 “프-독 10년물 국채 스프레드는 유럽 혼란의 가늠자 역할을 해왔다”며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으로 불안이 확산할 조짐을 보여주는 시장의 선(先)경고일 수 있다”고 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로존 국가 재정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거치며 크게 불어난 상태다. 여기에 국가별 정권 교체 조짐에 따른 과열 공약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 최근 유럽중앙은행(ECB)은 유로존 국가들에 부채 감축의 시급성을 강조하며 예산 통제를 당부했다. ECB가 대놓고 티낸 건 아니지만, 이번 당부의 이면에는 정치적 혼란과 정당 간 포퓰리즘 공약 경쟁에 대한 경고도 담겼다.

ECB뿐 아니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도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7개국이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약속한 재정적자 규정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정권을 잡으려는 퍼주기 공약 경쟁과 그에 따른 유럽 재정 부담 확대는 유럽 증시는 물론 이 시장에 투자하는 한국 개미에게도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유럽 주식시장에는 미국 빅테크 못지않은 성장 기대감과 수익률을 과시하는 종목이 많다. 영국 제약사 GSK와 스위스 제약사 로슈,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 스위스 식품기업 네슬레,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 프랑스 명품업체 LVMH, 독일 소프트웨어 기업 SAP 등이 대표적이다. 골드만삭스는 이들 기업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그래놀라즈(GRANOLAS)’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프랑스 총선과 유럽 재정 적자 이슈가 이어질 당분간은 유럽 증시에 대한 접근도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근 ECB의 피벗(pivot·통화정책 전환)을 유럽 경제 반등의 출발점으로 확신한 투자자가 있다면, 일단 좀 더 지켜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