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을 둘러싼 거시 환경에서 심상치 않은 신호음이 잇달아 나오면서 갈 길 바쁜 한국 증시가 흔들리고 있다. 올해 꾸준히 ‘사자’를 유지하던 외국인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 다가서자 ‘팔자’로 돌아섰고, 여전히 끈적한 고물가 지표는 금리 인하 기대감을 끌어내렸다. 달러-원자재 동반 강세라는 이례적인 풍경도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투자 심리를 억누르는 요소다.

여기에 우리 증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미국 중앙은행마저 매(통화 긴축 선호)와 비둘기(통화 완화 선호)를 오락가락하며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다만 국내 증권가는 여전히 비관보다는 낙관적인 시장 전망에 방점을 두는 분위기다.

코스피 지수가 4거래일 연속 약세를 보인 4월 17일 오후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고환율에 4거래일 동안 1조원 팔아치운 외국인

1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내 증시(코스피+코스닥)에서 외국인은 이달 12일부터 17일까지 4거래일째 순매도 흐름을 이어갔다. 이는 지난 1월 12~18일(5거래일) 이후 두 번째로 긴 연속 순매도 기록이다. 외국인은 12일 150억원, 15일 3100억원, 16일 4270억원, 17일 2150억원 등 4거래일 동안 총 9670억원을 팔아치웠다.

외국인의 변심이 유독 눈에 띄는 건 정부가 1월 말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계획을 밝힌 이래 외국인이 줄곧 ‘바이 코리아(Buy Korea)’ 기조를 유지해온 탓이다. 올해 들어 외국인은 1월 12~18일을 제외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순매도를 2거래일 넘게 이어간 적이 없었다. 시장에서는 최근 1400원 가까이 치솟은 원·달러 환율이 외국인 수급에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본다.

달러 강세 시기에는 외국인의 원화 자산 투자가 위축된다. 자금 회수를 위해 원화를 달러로 바꿀 때 환차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는 금융연구원이 2002년 3월부터 2021년 4월까지 외국인 자본 유출입을 분석한 결과로도 확인된다. 이 연구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 상승률이 2년 이내에 15%를 초과할 경우 외국인 자본 유입 규모는 평균 360억~420억달러 감소했다.

조선 DB

◇ 강달러인데 원자재 가격도 오름세

문제는 현재 달러만 강세가 아니고 원자재도 강세라는 점이다. 달러와 원자재의 동반 상승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보통은 역상관 관계를 보인다. 원자재는 주로 달러로 거래되는데, 달러 가치가 오르면 원자재의 내재가치를 보전하고자 시장이 원자재의 달러 표시 가격을 낮추기 때문이다. 달러가 안전자산 성격이 강하고, 원자재가 대표적 위험자산이라는 사실도 역상관 관계의 배경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 후퇴에 따른 달러 강세에도 주요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는 배경으로는 공급 차질이 꼽힌다. 대표적으로 국제유가 상승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非)OPEC 주요 산유국 협의체인 OPEC 플러스(+)의 감산 연장 결정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중동 위기감 고조 등이 영향을 미쳤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코코아는 작황 부진으로 생산비가 급등했는데 정부가 코코아 가격을 낮게 설정해 생산량이 줄었다”며 “구리는 기후 변화에 따른 전력 부족과 주요 광산 폐쇄로 공급 차질 우려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세는 공급 견인 인플레이션 위기감을 키운다. 고물가 장기화는 연내 금리 인하 기대감을 더욱 낮출 수밖에 없다. 올해 초만 해도 연내 6회에 달하던 금리 인하 횟수 예상치는 현재 2회까지 줄어든 상태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연준이 연말까지 금리를 낮추지 않고 동결할 확률은 8.9%까지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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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락가락 파월의 입… 그래도 증권가는 “걱정할 필요 없다”

가뜩이나 거시 환경이 심상치 않은데, 미 중앙은행 연준마저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16일(현지시각) 오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캐나다 경제 관련 워싱턴 정책 포럼 행사에 참석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를 향한다는 확신을 얻는 데까지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했다.

올해 1~2월 물가 지표가 시장 예상보다 높게 나왔을 때만 해도 파월 의장은 “계절성이 반영된 것”이라며 시장을 달랬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3월 미 소비자물가(CPI) 상승률마저 시장 예상치를 웃돌자 태도를 180도 바꾼 것이다. 파월은 지난 2021년에도 물가 상승세를 “일시적인 현상”으로 설명했다가 뒤늦게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나서야 했다.

국내 증권가는 일단은 낙관론을 유지하는 분위기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외국인 자금 유출과 관련해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자금 유출이) 나타날 수 있지만, 환율 상승 폭이 크지 않고 경기 사이클이 확장 국면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금리는 현재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가장 불확실한 요인이지만, 올해 전체로 보면 가장 확실한 요인이기도 하다”며 “인플레이션은 하락하는 과정에서 흔들림은 있겠지만, 떨어지는 방향성만큼은 확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