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 개혁을 둘러싼 논의가 한창이다. 15일에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산하 민간자문위원회가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보다 4~6%포인트(p) 높이고, 소득대체율을 40% 또는 50%로 조정하는 개혁안을 마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시감이 든다. 매 정권 반복돼 온 장면이어서다. 5년 전에도 10년 전에도 연금 개혁의 시급함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때마다 정부는 전문가를 모아 개혁안을 만들었지만, 실제 제도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데는 실패했다. 젊은 세대가 보험료를 더 내고 그걸 누리는 건 온전히 윗세대인 제도 특성 탓이다. 구조적으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바라본 여의도 전경. 주요 증권사 빌딩이 보인다. / 뉴스1

당장 보험료 부담이 커도 늙어서 후세대 도움을 받을 거란 믿음이 있다면 갈등의 골이 지금처럼 깊진 않을 것이다. 국민연금 제도가 개혁에 자꾸 실패하는 건 젊은 세대 전반에 팽배한 불신(不信) 때문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기금 고갈 논란이 커지자 “연금 지급 보장을 명문화하겠다”고 했다. 이 약속을 믿는 젊은이가 몇이나 될까. 국민연금을 둘러싼 모든 논란은 ‘믿지 못하겠음’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신’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요즘 국내 자본시장도 다를 바가 없다. 상당수 개인 투자자가 공매도(空賣渡·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남의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나중에 되갚아 차익을 남기는 투자 기법)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배경에는 제도 운영에 대한 불신이 깔려있다. 최근 금융당국이 적발한 외국계 투자은행(IB)의 관행적 무차입 공매도 불법 행위는 개미들 불신에 불을 지폈다.

남의 돈을 끌어다 쓰는 증권사는 신뢰를 목숨처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엉터리 내부통제 시스템으로 도마 위에 오른 증권사가 한둘이 아니다. 한국투자증권은 스타트업 보수 미지급과 기술 탈취 의혹 등의 내부통제 부실 이슈로 정일문 사장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호출되는 굴욕을 당했고, 박정림 KB증권 사장과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은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 처분을 받았다.

또 마스턴투자운용은 대표이사의 불법투자 혐의가 포착돼 수사당국이 수사에 착수했고, 하이투자증권은 한 부동산개발업체에 대출을 내주는 조건으로 30억원 상당의 자사 부실 채권을 팔았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금융사고 발생 건수는 2019~2022년 한 해 평균 7.8건에서 올해 14건으로 2배가량 급증했다고 한다. 금액 기준으로 보면 2019~2022년 평균 143억원에서 올해 688억원으로 5배나 늘었다.

신뢰를 갉아먹는 사고가 끊이지 않는 자본시장에 유동성이 넘쳐나길 바라는 건 과욕이다. 불신이 반복되면 정부가 어떤 설명을 해도 젊은 세대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국민연금 제도처럼 국내 자본시장도 망가질 수밖에 없다. 그때쯤 되면 투자노트 코너에도 “한국 말고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하자”는 글이 올라올지 모르겠다. 당분간은 우리 모두 눈에 불을 켜고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 노력을 감시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