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메타(페이스북 모회사)·애플·아마존·넷플릭스·구글 등 팡(FAANG)으로 불리는 미국 빅테크 기업의 시가 총액이 3조달러(약 3800조원) 넘게 증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여파로 미국 증시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많이 지수가 떨어졌다.

해가 바뀌고도 테크 기업의 주가 하락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 증시 상승을 견인해온 대표적인 기술주 애플과 테슬라의 하락이 두드러졌다. 새해 첫 거래일인 3일 미국 주식시장에서 애플 시가총액은 2조달러 아래로 미끄러졌고 테슬라 주가는 14% 폭락했다. 애플은 지난해 미국 증시가 하락하는 가운데 유일하게 시총 2조달러 이상을 유지한 유일한 기업이었다.

페이스북의 모기업 메타./로이터=연합뉴스

기술주가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면서 20여년 전 나스닥 시장을 붕괴시킨 ‘닷컴버블’을 떠올리는 투자자가 늘어나고 있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메타 주가가 64% 폭락했고 넷플릭스 역시 51% 떨어진 것을 고려하면 최근 테크주 하락은 ‘단순 조정’은 이미 넘어선 것 같아 보인다.

그렇다고 지금 테크주의 폭락을 닷컴버블이 붕괴했던 당시와 같이 생각하기는 어렵다. 무엇보다도 지금 빅테크 기업들은 높은 기술력과 구체적인 사업 모델을 바탕으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 보유하고 있는 현금 규모도 상당하다. 닷컴버블이 꺼진 뒤에 수많은 인터넷 기업이 사라졌지만, 지금은 이런 상황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강도 높은 통화 긴축과 경기 침체로 애플이나 테슬라의 이익이 줄어들 수는 있지만, 이들의 생존이 위협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많은 투자자가 닷컴버블 사태를 떠올리는 이유는 주가 하락 폭이 크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20년 전 증시 과열을 야기한 버블이 인터넷 기업 그 자체였다면, 지금 의심되는 버블은 기업이 아니라 주가에 끼어있어 상황이 다르다는 평가가 나오더라도 투자자 입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는 것은 매한가지다.

게다가 이른 시일 내 반등을 기대하기도 어려워 보인다. 코로나 확산 이후 2년 동안 꾸준히 오른 주가가 적정 수준으로 평가돼 지지되려면 테크 기업의 이익이 지금보다 더 빨리 늘어야 한다. 하지만 그동안 수익성보다는 성장을 우선순위에 두고 공격적으로 몸집을 키워온 이들 테크 기업은 긴축이 이뤄지는 경기 침체 상황이 되자 고용을 축소하고 비용을 줄이는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2000년 닷컴버블로 붕괴된 미국 증시가 충격을 딛고 회복하기까지는 4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닷컴버블 사태를 지나 지금은 빅테크로 성장한 아마존과 애플도 마찬가지다. 2000년 초 100달러에 육박했던 아마존 주가는 2001년 10달러 아래로 하락했는데, 닷컴버블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은 2003년 이후였다. 같은 기간 주가가 4달러에서 1달러 아래로 떨어졌던 애플 주가가 이전 수준으로 되돌아온 것도 3~4년이 지난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