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통화 긴축이 정점에 이르면서 모든 기업이 온전히 자기 체력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미국이 완화적인 통화 정책을 유지하면서 이어진 초저금리 시대에는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있는 기업도 그럭저럭 연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의 긴축에 발맞춰 한국은행도 다급하게 기준금리를 끌어올리면서, 공짜나 다름없는 자금에 의존하던 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고 있었는지 드러난다”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말처럼, 그동안 값싼 유동성(돈)에 의존해온 부실기업은 정리되고, 꾸준히 체질을 개선해온 기업만이 생존하는 혹한의 시기가 도래했다.
기업에 투자하는 주식시장도 살얼음판이다. 풍부한 자금이 증시를 부양하는 이른바 유동성 장세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실적은 더 노골적으로 주가에 반영된다. 문제는 시중 자금이 마르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 악화가 겹치면서 국내 기업의 실적 전망은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실적을 추정하는 기관이 있는 코스피 상장사 179곳의 내년 영업이익 전망치는 194조원으로 올해와 비슷한 수준이겠지만, 순이익은 148조원으로 2.5%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염동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재 2023년 영업이익과 순이익 증가율이 모두 역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데, 그간 이익 추정 사례를 보면, 다음 연도 실적이 역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은 흔하게 등장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물론 금융비용을 반영한 순이익의 규모와 흐름을 모두 확인해야 하는 시기다. 특히 실적이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지가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경수 하나증권 연구원은 “실적 추정치 변화가 주가와 얼마나 밀접한지는 모르는 투자자가 없을 정도로 중요한 지표”라며 특히 지수 등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외국인 투자자의 경우 “실적 상향이 예상되는 기업에 대한 투자 강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상장사의 전반적인 실적 둔화는 우려되지만 지속적인 이익 증가가 기대되는 기업에 투자할 것을 조언한다. 미래에셋증권은 시가총액이 5000억원 이상인 기업 중 지난 3분기까지 2분기 연속 어닝 서프라이즈(예상보다 좋은 실적 발표)를 냈고, 내년에도 영업이익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종목으로 포스코케미칼과 LS일렉트로닉, 두산(000150), 피앤티, 현대에너지솔루션, 넥스틴(348210) 등을 꼽았다.
금리가 인상되면서 기업의 금융 비용이 늘어나는 상황도 지켜봐야 한다. 부채 규모가 큰 기업은 고금리 상황에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고, 달러 강세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는 추세는 외화 차입이 많은 기업의 실적을 갉아먹는다. 예를 들어 지난 3분기, SK이노베이션(096770)과 S-OIL의 3분기 영업이익은 증권가의 예상치를 웃돌았지만, 환차손이 영업외비용으로 반영돼 순이익 규모는 예상보다 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