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 장기물 금리가 단기물 금리에 추월 당한 가운데, 금리 차(스프레드)가 22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IT버블이 붕괴됐던 2000년 이후 가장 큰 차이다. 미국 경제가 심각한 불황에 빠졌던 1980년대 초반과도 비슷한 수준이다.

통상 장단기 금리의 역전은 경기 둔화나 침체의 신호로 여겨진다. 금리 차의 확대는 경제가 침체에 빠질 위험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강도 긴축 정책이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증시 전문가들은 내년 상반기 중 본격적인 경기 침체가 시작될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 국채 10년물-2년물 금리 차(스프레드). /단위=%p, 출처=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경제통계(FRED)

30일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경제통계(FRED)에 따르면, 미 국채 2년물-10년물 금리 차는 지난 23일(현지 시각) 51bp(0.51%포인트)까지 벌어졌다. 10년물 금리는 지난 7월 6일부터 현재까지 줄곧 2년물 금리보다 낮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장단기 국채 금리 스프레드가 마이너스(-)의 영역에 들어섰다는 것은 글로벌 경기 침체 리스크를 시사한다. 만기 10년 이상의 장기 국채 금리는 지금 같은 기준금리 인상기에 자연스럽게 오르기 마련이나, 향후 경제 성장률과 물가 전망치가 높아질 때도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경제 성장률과 물가 전망이 하향 조정되면 장기물 금리는 하방 압력을 받는다.

경기 전망과 장기물 금리의 관계는 수요와 공급을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향후 경제 성장에 대한 기대치가 낮을 때, 비교적 안전한 자산인 장기 국채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장기물의 가격을 끌어올리고 금리(할인율)를 내리는 효과를 낳는다.

2년물-10년물 스프레드가 51bp까지 벌어진 것은 지난 2000년 4월 이후 2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미국은 그 해 3월부터 11월까지 경기 침체를 겪었다. 인플레이션의 선제적 억제를 위한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1999년 6월~2000년 5월)이 경기를 짓눌렀고, 결정적으로 2000년 3월 이른바 ‘닷컴버블’이 붕괴되며 전세계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미 국채 장단기물 금리 차는 1980년대 초반의 경기 침체기에도 지금과 비슷한 정도로 벌어진 바 있다.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제2차 석유파동으로 유가가 급등한데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불렸던 폴 볼커 전 연준 의장이 기준금리를 20%대까지 끌어올리며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심화했다. 1980년 2분기 GDP 성장률은 -7.8%였으며, 실업률은 7%를 넘었다. 마이너스 성장과 실업률 급등이 한꺼번에 나타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침체기였다.

증권가에서는 내년 상반기 중 경기 침체가 또 다시 현실화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본다. 이경수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미경제연구소(NBER)의 정의에 따른 기술적 침체(2개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률)는 이미 시작됐으나, 실질적 침체는 내년 상반기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28일(현지 시각) CNN에 따르면, 미국 네드데이비스리서치는 글로벌 경기 침체 확률이 98.1%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세계경제포럼(WEF) 역시 비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경제학자 10명 중 7명이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을 인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CNBC가 실시한 설문조사도 경기 침체가 임박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CNBC CFO위원회 회원 중 48%가 내년 상반기 중 침체가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 침체 시점을 올해 4분기로 예상한 응답자는 전체의 19%를 차지했으며, 이미 침체가 시작됐다고 답한 사람도 19%나 됐다.

다만, 경기 침체가 현실로 다가오더라도 과거와 같이 장기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이 센터장은 “만약 디폴트(채무 불이행)가 발생하고 신용 및 유동성 리스크가 동시에 발현된다면 부채를 강제로 줄이기 위해 구조조정이 일어나 침체가 장기화할 수 있지만, 이 같은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