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포인트까지 축소됐던 한국 국채 장단기 금리 차(스프레드)가 0.3%포인트 안팎에 머물고 있다. 국채 장기물은 단기물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기 때문에, 장단기 금리 차는 양(+)의 값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다.
최근 나타나는 장단기 금리 스프레드의 확대는 장기물 금리 상승에 기인한다. 통상 장기물 금리에는 기대인플레이션과 경기 전망이 반영되는데, 고물가 압력이 여전한 데다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추경)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국채 유통량 증가 및 가격 하락) 장기물로 분류되는 10년물 국채 금리(할인율)가 강세를 띠고 있다.
반면 단기 국채 금리는 매크로(거시) 전망이나 수급 우려보다는 기준금리에 밀접하게 연동되며, 장기물 금리에 비해 변동성이 크다. 단기물로 분류되는 3년물 국채 금리는 이미 긴축 우려를 반영해 지나치게 오른 만큼, 이제는 상승세를 멈추고 박스권에 머물고 있다. 이 때문에 10년물과 3년물 금리 스프레드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오는 8월까지는 이 같은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물가 지수가 상승세를 멈추고 변곡점을 지나며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 장기물 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서며 장단기 금리 차가 다시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 장기물 추가 발행 우려에 금리 강세…“단기물은 이미 너무 올라”
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11일 최소치(0.119%포인트)를 기록했던 국채 10년-3년물 금리 차는 최근 들어 다시 벌어졌다. 지난 달 25일까지만 해도 0.231%포인트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0.3%포인트 안팎까지 확대됐다.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먼저 고물가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해석된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미 국채 장기물 금리가 오르자, 한국 10년물 금리도 이에 동조화해 상방 압력을 받고 있다.
오는 10일(이하 현지 시각)로 예정된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앞두고 월가에서는 여전히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발언도 비관론에 기름을 부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옐런 장관은 7일 “미 행정부가 올해 평균 인플레이션을 4.7%로 전망하고 있지만 실제 물가 상승률은 이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인플레이션뿐 아니라 국채 수급에 대한 우려 역시 장기물 금리를 끌어올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석원 SK증권 지식서비스부문장은 “올해 경기가 작년만큼 좋지 못하다면 세수가 줄어들텐데, 그러면 정부는 결국 국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가 추가 국채 발행 없이 추경 재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경기 상황이 나빠지면 이 같은 계획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점점 단기물보다는 장기물 발행을 늘리는 추세다. 채권은 롤오버(만기 연장) 비용을 필요로 한다. 3년물보다는 10년물을 발행하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최 부문장은 “단기물 국채를 발행해서 계속 롤오버하기엔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고, 기준금리에 밀접하게 연동되는 단기물의 특성상 금리 변동에 대한 불확실성도 크다”며 “정부에서 채무를 늘려야만 한다면 단기물보다는 장기물 국채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 훨씬 안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상대적 단기물로 분류되는 3년물 국채 금리는 10년물과 비교해 정체된 상태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는 “보통 3년물은 10년물에 비해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이며, 특히 올해는 통화 정책을 선반영해 지나치게 빨리 오른 뒤 정체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미국의 상황과 비슷하다. 미 2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달 초 2.8% 턱밑까지 오르며 2018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 상무는 이에 대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앞으로 기준금리를 얼마나 더 인상하든 시장에는 이미 반영돼있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최근에는 미 국채 2년물 금리 역시 한국 3년물 금리처럼 10년물 금리에 비해 덜 오르며 정체된 상태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은행의 통화 정책에 대한 시장의 컨센서스가 어느 정도 형성돼있는 만큼, 3년물 같은 단기 국채 금리는 상승세를 어느 정도 멈춘 상황”이라며 “이처럼 국내 정책 이슈가 어느 정도 해소된 상황에서는 10년물과 3년물 금리가 서로 다르게 움직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 “물가 변곡점 확인 후 경기 우려 부각…장기물 금리 내려올 것”
그렇다면 향후 장단기 국채 금리 차는 어떻게 움직일까. 증시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에는 금리 차가 다시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먼저, 장기물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인플레이션이 정점을 찍고 반락할 전망이다. 정 상무는 “우리나라의 인플레이션은 6월이 지나야 변곡점에 도달할 것”이라며 “물가지수의 하락을 확인할 수 있는 8월까지는 지금과 비슷한 흐름을 이어가거나 장단기물 스프레드가 확대되다, 이후 ‘물가 정점론’이 힘을 얻고 경기에 대한 우려가 (물가에 대한 우려보다) 더 커지면 장기물 금리가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연구위원도 “지금처럼 경제 성장이 정체돼가는 가운데 물가가 중장기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으면, 10년물 금리는 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10년물 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물가 및 경기 전망은 대부분 최소 5년 후의 중장기적 지표다.
물가와 경기 지표에 정책당국이 어떻게 대처할 지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부가 고물가에 초점을 두고 기준금리 인상을 가속화한다면 단기물인 3년물 금리가 빠르게 오를 것이며, 이는 장단기 스프레드의 축소를 부추길 수 있다.
최 부문장은 “지금 한국은행은 (경기보다는) 물가를 우려해 기준금리를 올리는 정책을 펴고 있어 앞으로 장단기 스프레드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경기 둔화 리스크가 커지면 금리 인상 속도도 늦춰질 것이기 때문에, 순간순간 스프레드가 벌어지는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