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주가가 2배 넘게 오르며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에게도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엔비디아가 최근 고전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주가가 37.55% 빠진 엔비디아를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떨어질 때마다 물타기(평균 단가를 낮추기 위해 주가가 하락할 때 주식을 추가 매수하는 것)를 하고 있다’와 ‘2분기 실적 전망 등을 고려하면 더 떨어진다’는 반응으로 나뉘고 있다.

미국 산타클라라에 위치한 엔비디아 본사/ 블룸버그

27일(현지 시각) 엔비디아는 전날보다 5.38% 상승한 188.1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 23일부터 5거래일 동안 주가가 15% 넘게 올랐지만 연초와 비교하면 여전히 37% 넘게 하락했다.

엔비디아는 지난 25일 올해 2~4월(회계 기준 1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56억6000만 달러) 대비 46% 증가한 82억8800만 달러(약 10조53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월가 전망치(81억1000만 달러)를 뛰어넘은 분기 기준 사상 최대 실적이다.

전년 동기 대비 83% 급증한 데이터센터 부문이 실적 개선을 이끌었다.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대표되는 엔비디아의 주력인 게임 사업 매출(37억3000만 달러)을 뛰어넘었다. 주당순이익(EPS)도 1.36달러로 시장 평균 예상치(1.29달러)를 상회했다.

1분기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했음에도 엔비디아는 웃지 못했다. 향후 실적 때문이었다. 엔비디아는 2분기 매출 전망치를 81억 달러(약 10조2800억원)로 제시했다. 이는 월가 예상치인 85억4000만 달러(약10조8400억원)를 하회하는 수치다. 이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엔비디아는 장외시장에서 7% 하락하며 158.17달러로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상하이 전면 봉쇄 조치로 게임 사업에서만 2분기 매출이 당초 예상보다 약 4억 달러 줄어들 것으로 엔비디아는 전망했다. 엔비디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봉쇄 여파로 공급 물량이 원활하지 않아 약 5억 달러 규모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악재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 감소다. 최근 가상자산이 급락하며 관련 산업과 채굴 열풍이 이전보다는 시들해졌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 채굴을 하기 위해 필요하던 GPU가 수요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실망스러운 2분기 전망으로 엔비디아는 시간외거래에서 한때 10% 넘게 주가가 떨어졌지만, 다음날인 26일 상황이 바뀌었다. 개장 전 5% 하락세로 정규장을 시작했던 엔비디아는 이날 낙폭을 모두만회하고 5.16% 오르며 장을 마감했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엔비디아가 과매도 구간에 들어갔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와 중국 이슈는 언젠가 해소될 일회성 이슈라는 이유에서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은 전세계 공급망의 중심이라 중국 봉쇄가 공급과 수요 모두에 영향을 미쳤지만, 시장이 다시 열리고 있고 수요와 공급 모두 정상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로건 커프 에드워드존슨 애널리스트는 “시간외거래에서 엔비디아 주가가 떨어진 것은 지정학적 사건을 놓고 과잉 반응한 탓”이라면서 “수요 환경 자체가 나빠진 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문준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러시아와 중국 이슈는 장기화되고 있을 뿐 결국 해소될 일화적 이슈인 반면, 엔비디아의 미래 성장 동력인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과 기술 경쟁력은 아직까지 견고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가 약세를 기회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황 CEO는 26일(현지 시각) 대만에서 열린 정보기술(IT) 박람회인 ‘컴퓨텍스 2022′ 행사에서 “자율주행은 단지 자동차 사업일 뿐만 아니라 AI 사업”이라면서 “오늘날 자동차는 우리에게 아주 작은 사업이지만 6년 뒤면 110억 달러(약 13조8000억원) 규모의 매출액을 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류영호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경쟁력이 있는 데이터센터 부분, 하반기 신제품 효과 등을 고려한다면 지금 엔비디아에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월가에서도 엔비디아에 대한 매수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CNBC에 따르면 JP모간은 엔비디아의 목표가를 기존의 350달러에서 285달러로 하향했으나 투자 의견은 ‘비중 확대’를 유지했다. 이밖에 제프리스(목표가 370달러), 바클레이즈(목표가 295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320달러→270달러) 등 월가 투자은행들은 목표가를 낮췄을지언정 투자 의견 ‘매수’는 유지했다.

그러나 당분간 엔비디아에 대한 매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킨가이 챈 서밋인사이트그룹 애널리스트는 “실적 전망치를 만족시키지 못한 대부분의 기술 업체가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의 봉쇄 조치를 탓하고 있다”면서 “엔비디아는 앞으로도 침체 국면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지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당장 주가가 반등할 실적모멘텀이 부재하고 절대적 저평가 상태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에 적극적인 매수는 시기상조”라고 설명했다.

한편, 서학개미(미국 주식에 투자하는 국내 투자자)는 올해 1월 1일부터 이달 27일까지 엔비디아 주식을 8억3031만 달러 어치 순매수 했다.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하면 테슬라에 이어 두번째로 많이 사들인 종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