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질금리가 플러스로 돌아섰다. 세인트루이스연방준비은행 경제통계(FRED)에 따르면 10년물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는 지난 5일(현지 시각) 기준 0.18%까지 올라왔다. 지난달 29일 0.01%을 찍으며 플러스로 전환한 후 연일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실질금리인 10년물 물가연동국채 추이/자료 출처=FRED(Federal Reserve Economic Data)

10년물 물가연동국채(TIPS) 금리는 실질금리로 해석한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예상 인플레이션율을 뺀 값이다. 즉 물가상승을 감안한 현재 돈의 가치를 나타낸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라면, 현금 가치가 매년 떨어진다는 의미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의 최고 경영자인 레이 달리오가 “Cash is trash”(현금은 쓰레기다)라고 말한 것도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현금이 평가 절하하는 상황을 빗댄 표현이었다.

실질금리 마이너스 시대에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주식, 부동산 등 돈으로 살 수 있는 모든 자산에 투자했다. 특히 긴 시간 성장주가 주목받았다. 성장주는 당장 성과는 미미하지만, 보유 기술, 시장 변화 등을 기반으로 향후 이익이 크게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을 뜻한다.

그간 성장주가 가파르게 오른 것도 실질금리 마이너스의 연장선에 있었다. 성장주는 미래 수익에 많은 가치를 부여하는 종목이다. 저금리 시대, 당장 현금을 갖고 있느니 먼 미래 큰 돈을 벌겠다는 기업의 ‘꿈’에 투자하는 게 더 나은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주는 먼 미래의 불확실한 이익을 가지고 밸류에이션을 하기에 자산 가격 민감도(듀레이션)도 크게 나타난다. 만약 이자가 올라 지금부터 돈을 벌어들이는 예상 시점까지 할인율이 높아진다면, 길어지는 시간만큼 이익이 줄어든다는 의미가 된다. 최근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성장주가 타격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실질금리가 플러스로 돌아서면서 가치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가치주는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 낮게 평가돼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는 주식을 의미한다. 현재 자산가치가 높거나 탄탄한 실적을 내고 있지만, 밸류에이션 대비 시장가치는 낮은 기업들이 해당된다.

가치주는 성장주와 비교해 이자율에 대한 민감도가 낮다. 돈을 벌어들이는 시점을 기준으로 뒀을 때 할인율을 적용받는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미래 성장성보다 이미 갖는 자산의 안전성에 높은 프리미엄을 부여받는다. 그렇다고 가치주가 무조건 안전한 선택이 되진 않는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은 올해 가치주의 귀환을 점치며 금융·필수소비재·에너지 등 실적을 잘 내고, 소비자에게 가격 인상분을 전가할 수 있는 탄탄한 기업에 투자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에서는 실질금리가 플러스로 돌아서면 현금의 가치가 귀해지기에 현금이 풍부하거나 현금 창출력이 튼튼한 기업은 프리미엄을 부여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돈 잘 버는 기업만 모아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COWZ(Pacer US Cash Cows 100 ETF)를 대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해당 ETF는 Russell 1000 내에서 잉여현금흐름(FCF) 수익률이 높은 기업 100개를 선택해 투자하는 상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