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증시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에 변동성을 키우고 있다. 선진국의 경기 펀더멘털이 견조하고, 글로벌 경제의 유가 의존도 역시 과거보다 낮은 만큼 당장 스태그플레이션이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지만, 길어지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증시에서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797.42포인트(2.37%) 내린 3만2817.38에 거래를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127.78포인트(2.95%) 내린 4201.09에, 기술주 중심 나스닥지수는 482.48포인트(3.62%) 내린 1만2830.96로 장을 마감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국제유가 급등,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 강화 등이 글로벌 경기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투자심리가 위축시킨 것으로 풀이됐다. 이미 연초부터 인플레이션 상승, 금리 인상 우려로 흔들리고 있던 증시에 악재가 거듭 쏟아지는 상황이다.
최근 국제유가는 연일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전날에는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섰다. 6일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5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장 초반 139.13달러까지 치솟았고, 뉴욕상업거래소(NYMEX) 4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한때 130.5달러를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가 러시아로부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조치를 논의하는 가운데 국제유가 전망치는 꾸준히 상향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시장에서 러시아 원유가 사라지면 3개월 안에 국제유가가 150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JP모건은 올해 안에 국제유가가 185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증권가에서는 당장 스태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하진 않겠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태가 예상보다 길어지는 상황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제조업,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는 고유가 상황에 더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더 주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과거 1~2차 오일쇼크 당시보다 경제 펀더멘털은 훨씬 견고하다”며 “과거보다 글로벌 경제 유가 의존도도 낮고,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물가와 경기를 모두 안정시키는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를 방어하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하지만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고유가 부담은 공급망 불안에 이어 신용 리스크 확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며 “지난달 국내 무역수지는 소폭 흑자로 돌아섰지만, 유가 상황을 고려하면 재차 적자 전환할 여지가 높다”고 덧붙였다.
김유미 키움증권 연구원은 “미국 물가 상승률은 올해 2분기 정점을 형성한 뒤에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며 “풍부한 유동성으로 인한 물가 상승 압력이 상품에서 서비스 부문과 임금으로 옮겨가면서 스태그플레이션 발생 확률을 높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미 연준 정책 강도에 주목했다. 김 연구원은 “당장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낮지만, 국제유가로 대표되는 비용인플레이션, 임금과 통화량의 인플레이션 등 요인이 산재하고 있다”며 “연준의 정책이 강화될 경우 기대 인플레가 낮아지고,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도 줄어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월가에서도 글로벌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고, 소비자물가는 상향 조정하며 스태그플레이션 경고음을 내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최대 채권운용사 핌코를 창립한 빌 그로스는 3일 CNBC와 인터뷰를 통해 “글로벌 중앙은행이 저금리 상황에 갇히면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며 “지금은 주식을 매수하기 좋은 시점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티안 켈러 바클레이즈 투자은행 연구원은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상품 가격 급등, 위험회피 성향 증가는 스태그플레이션 충격을 의미한다”며 “유럽이 미국보다 더 취약해보이는 가운데 중국은 상대적으로 그 리스크에 덜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