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견고하던 삼성자산운용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지난해 6월 50%대 밑으로 내려온 삼성자산운용의 ETF 시장 점유율은 현재 40%대 초반까지 떨어진 상태다.
반면 2위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점유율을 늘리며 삼성자산운용을 맹추격하고 있다. 현재 두 회사의 점유율 격차는 약 6%포인트에 불과하다. 증권업계에서는 코스피 등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이 주를 이루던 ETF 시장이 특정 테마형 상품 위주로 재편되며 테마 ETF에 빠르게 뛰어든 미래에셋이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1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전날 기준 삼성자산운용의 ETF 순자산 총액은 29조9389억원이었다. 1년 전 순자산 총액(29조1954억원)과 비교해 7400억원 가까이 늘었지만, 시장 점유율은 50.86%에서 42.3%로 대폭 낮아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경우 ETF 순자산 총액이 지난 1년 간 15조8027억원에서 25조3542억원으로 증가했다. 이 기간 시장 점유율은 27.53%에서 36.18%까지 높아졌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ETF 시장 점유율 확대는 빠른 속도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6일 30%대에 안착하며 금융 투자 업계에서 화제가 됐는데 현재는 40%대를 넘보고 있다. 3~5위 운용사인 KB자산운용·한국투자신탁운용·NH아문디자산운용의 점유율이 지난 1년 간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뤄 볼 때, 삼성자산운용 몫의 상당 부분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가져왔다고 해석할 수 있다.
증권업계에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약진 이유를 테마형 ETF의 인기에서 찾는다. 김찬수 한국펀드평가 연구원은 “과거에는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ETF가 인기 있었다면, 요즘은 신재생 에너지나 메타버스(가상세계), 2차전지 같은 특정 테마에 투자하는 상품이 많이 출시되는 등 ETF 시장이 전체적으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 2020년부터 테마형 ETF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0년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새로 출시한 ETF 12개 가운데 9개가 전기차·2차전지·클라우드컴퓨팅·게임 등 특정 테마에 투자하는 상품이었다. 같은 기간 삼성자산운용이 출시한 ETF 11개 중에서는 이 같은 테마형 상품이 3개에 불과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미래에셋은 지수형 ETF에서는 삼성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입지가 작았는데, 그 대안으로 재작년부터 테마형 상품에 많은 공을 들여왔다”며 “때마침 중국 전기차 ETF가 ‘메가히트’를 치면서 다른 테마 ETF에도 자금이 많이 유입되며 전체 시장을 리드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이 12월 8일 출시한 ‘TIGER 차이나전기차SOLACTIVE’ ETF는 최근 1년 간 설정액이 2조8400억원 늘었다. 이 상품은 장시깐펑리튬, 비야디(BYD), 선전이노방스, CATL 등 미국·중국·홍콩에서 거래되는 중국 전기차 및 부품 관련주에 간접 투자한다. 현재 순자산은 3조1200억원으로, 5조5000억원을 기록한 삼성자산운용의 KODEX200 ETF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과거 ETF 투자자들은 주가지수의 등락에 맞춰 레버리지, 인버스를 포함한 지수형 상품을 사서 바로 되파는 식의 단기 투자를 많이 했다면, 요즘은 10년 후를 바라보며 연금 계좌에서 일정 금액을 적립식으로 장기 투자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ETF가 ‘단타’ 투자처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주식형 펀드의 대안적 성격을 띠게 됐고, 테마형 ETF로 자금이 이동하게 됐다는 얘기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시장 점유율 경쟁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연금 상품으로 활용 가능한 ETF 등 경쟁력 있는 상품을 꾸준히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