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장 마감 직전 미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이 돌연 급락(달러화 가치 하락)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달러 당 1197원이 넘던 환율이 2~3분 만에 1191원대로 곤두박질 친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날 1200원에 거래를 시작한 후 1196~1198원대에서 등락하던 원·달러 환율은 장 종료와 함께 1191.1원에 마감했다. 일 변동폭이 3~4원에서 최대 5원에 그치는 요즘 외환 시장에서 환율이 몇 분 만에 6~7원이나 하락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환율 급변동을 LG에너지솔루션(373220)과 연관짓는 해석이 나왔다. 이날 장 종료를 기점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지수에 편입됐기 때문에,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펀드(특정 주가지수를 구성하는 종목들에 투자하는 펀드)의 외국계 자금이 갑자기 유입되며 시중에 공급된 달러화가 일시적으로 급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장 종료 직전 LG에너지솔루션에는 외국계 기관 자금이 대거 들어왔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날 폐장 직전인 오후 3시 29분부터 30분 사이 LG에너지솔루션의 주식 175만주가 동시호가 46만3000원에 한꺼번에 거래됐다. 이날 하루 거래된 주식 수(328만주)의 절반이 넘는 규모다. JP모간과 크레디트스위스(CS)증권, 모건스탠리증권 등 외국계 증권 창구에서 수십만주 씩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자금은 이날 장 종료를 앞두고 LG에너지솔루션에 빠르게 유입되기 시작했다. 오후 3시 12분까지 10억원 순매도를 기록했던 외국인은 돌연 ‘사자’로 전환해 매수세를 늘려나갔다. 장 종료 직전 3시 29분까지 80억원 순매수를, 폐장 시간 기준으로 1120억원 순매수를 기록했다.
장 종료 직전 LG에너지솔루션에 물밀듯이 유입된 외국인 자금은 이날 유가증권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쳤다. 전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우려가 확산되면서 하루 종일 요동치던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은 오후 3시가 좀 넘어 ‘사자’로 전환한 뒤, 1981억원 순매수로 장을 마감했다.
다만 이날 LG에너지솔루션의 외국인 매수 수요가 원·달러 환율을 떨어뜨리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것이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외국인의 달러화 매도(주식 매수) 수요가 몰리긴 했지만, 한두 종목이 환율을 몇 분 안에 6~7원이나 떨어뜨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이날 장 종료 직전 원·달러 환율이 급락했던 데는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안전자산인 미 달러화 가치가 오르며 장 초반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기록했는데, 보통 환율이 1200원에 도달하면 네고 물량이 늘어난다”며 “이미 장 종료 전부터 환율이 하방 압력을 받고 있었다”고 말했다.
네고 물량이란 수출 업체가 수출대금으로 받은 외화를 원화로 환전하려는 수요를 뜻한다. 보통 달러화 가치가 높을 때 네고 물량이 많이 유입된다. 이 물량이 유입되면 시중에 달러화가 많이 공급돼 원·달러 환율이 하락하기 마련이다.
김 연구원은 “어제 장중 내내 달러화 매수(비드) 수요가 거의 없어 거래량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이런 경우 환율은 다른 때보다 수급에 더 크게 영향을 받곤 한다”며 “최근 환율 안정을 위한 당국의 개입 얘기가 계속 나왔던 만큼, 장 종료 직전 외환 당국이 직접 수급에 개입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이날 원·달러 환율이 장 마감 후 역외 시장에서 곧바로 반등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MSCI 편입 같은 특정 사건 때문에 환율이 급락한 것이라면, 장 종료 후 역외 시장에서도 하락세를 이어갔어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따라서 이날 갑작스러운 환율 급락을 특별한 사건보다는 수급에 의한 일시적 현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김 연구원은 설명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상무)도 “외국계 기관에서 매수 주문을 넣었더라도 실제 체결일까지는 3일이 걸리기 때문에 곧바로 외환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 외국계 기관이라도 한국에서는 원화로 환전해 펀드를 운용하는 만큼, 매수 주문 때문에 달러화가 즉시 유입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상무는 “LG에너지솔루션보다는 선박이나 대형 플랜트 같은 규모 큰 수출 건이 환율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